탈세 위해 국적 바꿔…원정진료 수익 은닉한 의사도 '덜미'

입력 2024-07-02 12:00   수정 2024-07-02 12:06


국내에서 성형외과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A씨는 동남아 현지 병원 세미나 참석을 가장한 채 원정 진료를 했다. A씨는 원정 진료 대가를 가상자산으로 받았다. 이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매각하고, 외국인 차명계좌를 이용해 ATM으로 현금을 수백회 현금 인출했다. 이어 본인 명의 계좌로 다시 수백회에 걸쳐 현금 입금하는 방식으로 자금세탁을 했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

국세청은 국적 세탁과 가상자산 등 신종 탈세 수법을 통해 해외수익을 은닉한 업체 및 해외 원정 진료 소득 탈루, 국내 핵심 자산 무상 이전 등 역외탈세 혐의자 총 41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착수했다고 2일 발표했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자 유형은 △국적을 바꾸거나 법인 명의를 위장한 신분 세탁 탈세자 (11명) △용역대가로 가상자산을 받으며 수익을 은닉한 코인 개발업체 (9명) △해외 원정 진료·현지법인을 이용한 탈세 (13명) △국내에서 키운 알짜자산을 국외로 무상 이전한 다국적기업 (8명) 등이다.

국내에서 거주하는 B씨는 해외에서 미신고 사업으로 얻은 소득을 신고 누락한 후 해당 자금을 해외 비밀계좌에 은닉했다. B씨는 해외 이주 의사 없이 국내에 계속 거주하며 사업을 영위할 예정인데도, 이른바 ‘황금비자’로 외국 국적을 사실상 매입해 국적을 변경했다.

B씨는 잠시 외국에 머무른 후 주민등록번호와 한국 여권을 버린 채 이름을 바꾼 외국 여권으로 입국하면서 추적을 피했다. 숨겨둔 재산으로 호화 주택을 구입하는 등 호화생활을 영위했다가 적발됐다.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들은 국적 변경으로 해외 자산 및 계좌의 소유주가 외국인 명의로 바뀌는 경우 국세청이 국가 간 정보교환 등을 통해 해외 자산 및 수익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을 교묘히 악용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성형외과·피부과 등 국내 병·의원을 찾는 외국인이 다시 증가하는 가운데 일부 의사들이 동남아시아 등 현지에서 원정 진료 수익을 은닉한 혐의도 확인됐다.

이들은 해외 원정 진료 대가를 법정통화 대신 추적이 어려운 가상자산으로 수취한 후 차명계좌를 통해 국내에 반입했다. 이 밖에도 해외 현지 브로커에게 환자 유치 수수료를 허위·과다 지급하고 차액을 개인 계좌를 통해 돌려받았다가 국세청에 덜미를 잡혔다.

일부 소재·부품업체는 사주 일가의 이익 분여(分與) 등의 목적으로 해외 현지법인에 법인자금을 유출했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자본 잠식된 현지법인에 투자 명목으로 거액을 대여한 후 출자전환으로 채권을 포기하거나 허위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과세당국의 현지 확인이 어려운 점을 악용해 법인자금을 유출했다. 일부 업체는 해외 거래처로부터 받은 수출대금을 사주가 해외에서 가로채 자녀 해외 체류비 등 사적인 목적으로 유용하기도 했다.

정재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세법 전문가의 조력 및 가상자산 등 첨단기술의 등장으로 역외탈세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고도화되고 있다”며 “역외거래를 이용해 국부를 유출한 탈세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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