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병으로 회사를 떠나야만 했을 때 공급망 관리의 달인이었던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 팀 쿡을 2011년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 선발했다. 월마트는 창업자인 샘 월튼 가문이 여전히 주요 경영진과 이사회에 참여하며 전문 경영인을 통해 회사를 운영한다. 록펠러는 공익재단에 전 재산을 환원하고, 재단이 기업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도록 함으로써 창업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아르노 회장은 한 달에 한 번씩 5명의 자녀를 LVMH 본사로 불러 점심을 함께하면서 각종 사업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지난 4월 연례회의에서 삼남까지 이사회에 합류한 데 이어 25세인 막내도 조만간 이사회에 입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5명의 자녀가 모두 경영 수업을 받는 것이다. 프랑스는 민중이 군주를 시해한 혁명의 발상지이자 ‘공산(共産)’이란 몽상을 꿈꿨던 혁명가들의 고향이다. 그런 나라의 대표 기업이 혈연 상속을 주요 승계 플랜으로 가동한다.
사회 민주주의와 코포라티즘(노·사·정 협력 지배)이 가장 번성한 나라로 꼽히는 스웨덴이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바꾼 것도 국가적 차원의 기업 승계 플랜이 절실해서다. 1980년대까지 스웨덴의 잘나가던 뿌리 기업들이 과도한 상속세로 혈연 상속이 불가능해지자 기업인들은 매각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 기업 대부분이 독일에 팔렸다.
모리스 창에 이어 마크 리우가 올해까지 6년간 회장직을 이끌었고, 후임으로 부회장이던 C C 웨이가 올 주주총회에서 회장직에 선출됐다. 그나마 리우 회장 시절엔 모리스 창이 후견인 역할을 했지만,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웨이 회장 시대의 TSMC는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야 한다. TSMC는 글로벌 금융 큰손 등 외국인 지분율이 75%에 달한다.
기업 경영의 역사에서 최대 난제 중 하나는 승계 과정에서 창업가 정신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로 집약된다. 국가 간 첨단 산업 전쟁이 치열한 요즘엔 나라를 대표하는 주요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세대 간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래서 글로벌 주요 기업들은 이른바 ‘승계 플랜’을 오랫동안 준비한다. 아르노 방식이건, 모리스 창 방식이건 정답은 없다.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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