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항공사 오명 벗은 LCC...어떻게 소비자 사로잡았나[LCC ‘주류’가 되다②]

입력 2024-07-09 09:43   수정 2024-07-09 09:51

[스페셜 리포트]



“누가 저비용항공사(LCC)를 이용하겠어?”

LCC가 한국에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런 의구심을 가졌다. LCC가 지금처럼 대형항공사(FSC)를 뛰어넘어 화려하게 비상하리라고 여긴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한국의 LCC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국내에서 LCC가 처음 국제선을 띄운 건 2008년이다.

2005년 설립해 김포와 제주도만을 오가던 제주항공이 그해 처음 일본으로 항공기를 띄우며 국내 LCC의 첫 해외 취항이 시작됐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 1990년대에 LCC가 처음 등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만 해도 LCC를 바라보는 전망은 어두웠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LCC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기내식과 음료, 주류 제공 등 다양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FSC에 오랜 기간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게 LCC는 ‘불편한 항공사’라는 취급을 받았다.

많은 인원을 태우기 위해 좌석 간격을 최대한 좁히고 아무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채 티켓 값을 낮추는 데만 힘을 쏟았던 LCC의 비즈니스 모델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안전성도 논란이 됐다. 항공사 운영 경험이 전무한 기업들이 연이어 LCC를 출범시키다 보니 생겨난 우려다.

실제로 과거 LCC 이용 후기들을 보면 ‘승무원들이 친절하지 않다’, ‘자리가 너무 좁아서 힘들었다’, ‘기체가 너무 흔들려 불안했다’ 등과 같은 좋지 않은 내용의 글들이 쏟아졌다. 게다가 운항 초기 잦은 지연 및 결항까지 이어지며 LCC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듯 보였다. 그러나 LCC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시선들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격 마케팅으로 브랜드 친숙도 높여
오직 저렴한 가격에만 올인하는 해외 LCC와 달리 참신한 마케팅, 그리고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한국형 LCC’ 모델을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

초반에 제기됐던 각종 우려들을 털어내고 빠르게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배경이다. 지난해 약 2500만 명의 해외여행객이 LCC에 몸을 맡기고 해외로 향한 것도 이런 노력 끝에 얻은 결과다.

특히 LCC가 한국에서 빠르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주된 요인으로는 우선 이들의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꼽을 수 있다.

현재는 사라졌지만 과거 포털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실검)’이 있었을 당시 주요 LCC들은 여기에 자주 이름이 올라오는 단골들이었다. 수시로 진행하는 파격적인 프로모션 때문이었다.

예컨대 제주항공의 경우 과거 다양한 ‘퀴즈 이벤트’ 등을 수시로 열어 정답을 맞힌 이들을 뽑아 ‘무료 항공권’ 등을 제공했다. 이때마다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접속자들이 대거 몰렸으며 실검에 ‘제주항공’이라는 이름이 올라갔다.

티웨이항공은 선착순으로 일본, 홍콩, 대만 등 해외 항공권을 500원이라는 특가에 내놓는 등의 이벤트를 열었는데 이때마다 실검 순위를 장악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들 외에도 여러 LCC들이 비슷한 이벤트를 출범 초기에 적극적으로 진행하며 실검에 오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막대한 비용을 써가면서 이처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초기 LCC가 출범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항공사가 과연 안전할까’라는 이유로 탑승을 꺼리는 일이 많았다”며 “LCC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앞세워 ‘화제몰이’에 성공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브랜드로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한국형 LCC 구축으로 소비자 공략

뛰어난 서비스도 소비자를 사로잡은 비결로 내세울 수 있다. 국내 LCC는 다양한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며 탑승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이들 역시 처음부터 서비스에 신경을 썼던 것은 아니었다. 과거엔 해외 LCC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서비스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LCC 산업의 성장세를 눈여겨본 이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치열한 ‘손님 모시기’ 경쟁이 펼쳐지면서 현재는 그 수가 9개로 늘어났고 이들의 서비스 경쟁도 매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기내 이벤트는 기본이다. 보통 해외에서 LCC를 타면 비용이 저렴하지만 기내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단점도 분명히 있다.

한국 LCC들은 다르다. 승객들이 기내에서 즐길 수 있도록 승무원들이 직접 선보이는 마술쇼, 타로점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경쟁사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FSC만의 전유물이었던 와이파이를 도입한 LCC도 생겨났다. 진에어다. 올해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기내 와이파이 사용허가를 받고 일부 항공기에 이를 도입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마트폰, 노트북 등을 이용해 웹 서핑이나 업무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충성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멤버십 제도 등을 운영하며 회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한국 LCC가 갖고 있는 특징이다.

일각에선 기존에 항공사업을 영위하던 대기업들이 일찌감치 이 사업에 뛰어든 점도 국내 LCC가 빠르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지목된다.

아시아나항공은 LCC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2007년 말 에어부산을 설립하며 LCC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한항공은 이듬해인 2008년 진에어를 앞세워 LCC 취항에 나섰다.

현재 합병을 준비 중이지만 당시만 해도 경쟁사였던 두 FSC가 나란히 LCC에 뛰어든 것을 계기로 소비자들의 인식도 서서히 바뀌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두 회사 덕분에 ‘LCC는 안전하지 않다’라는 오해가 해소되면서 LCC 대중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안전한 운항을 위한 LCC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정비 인력 등에 대한 적극적 투자와 더불어 시간이 흐를수록 운영 노하우가 쌓이면서 잦았던 항공기 결항과 지연도 점차 줄어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LCC를 탑승하는 데 있어 불안함을 갖는 이들은 찾기 어렵다. LCC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굳게 쌓인 모습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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