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희애가 '돌풍'에 대한 애정과 자신이 연기한 정수진을 연기하며 느낀 고민을 전했다.
김희애는 3일 서울시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 인터뷰에서 "저는 정치도 모르고, 알다시피 픽션이고, 한국 정치가 역동적이어서 연관되게 생각될 수 있지만, 극적인 스토리"라며 "다 섞인 가상의 캐릭터"라고 말하면서 연관성이 언급된 실제 정치인들과의 관련성에 대해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도 "제가 출연한 것도 다 문제작이었다"며 "그런 건 소재일 뿐이고, 새로운 창작물, 음식일 뿐이다. 좋은 재료라고 생각했다"고 소신을 전했다.
'돌풍'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사이의 대결을 그린 드라마다. 권력을 향한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인물, 박동호와 정수진의 격정적인 대립을 그린다. 치열한 정치 대결 속 인물의 감정이 돌풍처럼 몰아치는 전재 속에 배우 설경구와 김희애가 각각 박동호, 정수진으로 분했다.
김희애는 한국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김희애가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 없던 강렬한 카리스마와 서사를 지닌 정수진으로 폭발적인 열연을 펼친다.
▲ 공개된 소감은 어떨까.
저는 3번이나 봤다. 오랫동안 사람들에 어떻게 봐줄지 기대됐다. 저는 기대했던 작품이었지만. 친한 친구들은 재밌다고 좋게 얘기해준다. 3번을 보면서도 새로 보는 느낌이다. 대본을 열심히 외웠는데도 새롭게 느껴져서 죄지은 거 같기도 하고, 반성도 됐다. 지루하고 재미없다면 3번을 보겠느냐고 자위도 하면서. 그렇게 봤다.
▲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속도감이 빨랐다. 촬영하면서 의식을 할 때도 그랬고, 편집할 때도 그랬다. 몇번에 걸친 속도감 있는 결과가 됐다. 많이 편집됐다. 모든 배우, 스태프가 이 작품을 사랑했다. 이 작품을 보면 귀한 부분들이 많아서 소중하게 느껴졌다. 요즘에 트렌디하고, 젊은 배우들이 나오는 작품들을 저 포함해서 선호하는 분위기도 있는데, 이렇게 묵직하게 돌직구로 써 주시는 작품이 감사했다.
▲ 대사의 말투도 문어체였고, 용어도 어려웠다.
읽기도 어려웠다. 연기고 뭐고 간에 대사만 잘 전달하자고 했다. '발연기라고 들어도 좋다'였다. 무조건 발음만 잘 전달하자고 했다. 저도 대사 전달이 안돼 돌려보기로 하면 그렇더라. 그래서 전달만 잘되길 바랐다. 혀가 꼬이도록 외웠다. 설경구 배우와 '밥 먹었니?' 이런 대사 하고 싶다는 말을 농담으로 하기도 했다. 저도 제 연기를 봐주시길 바라는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제 앞에 있는 배우를 최대한 서포트하길 바랐다. 지금의 제 스탠스는 저로 인해 더 연기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페이스메이커 같은. 저도 나이도 들고, 제가 선배라고 해서 위축되지 않았으면 했다.
▲ 박경수 작가가 따로 주문한 말이 있었을까.
사실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 확실한 작품을 쓰는 분은 자신만의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아니시더라. 연기도 생각한 대로 하고, 연출도 자유롭게 하라는 생각이 들었다.
▲ 몇몇 정치인들의 실명이 언급되며 모델이 된 게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정치도 모르고, 알다시피 픽션이고, 한국 정치가 역동적이어서 연관되게 생각될 수 있지만, 극적인 스토리다. 다 섞인 가상의 캐릭터다.
▲ 정치 드라마라 부담은 없었나?
제가 출연한 것도 다 문제작이었다.(웃음) 그런 건 소재일 뿐이고, 새로운 창작물, 음식일 뿐이다. 좋은 재료라고 생각했다.
▲ 함께한 설경구는 어땠을까.
오랫동안 팬이었고,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고(웃음), 영혼을 갖고 연기를 해서 좋았다. 그분이 '돌풍'의 메인 캐릭터라면 저는 서포트 같은 악당 같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서사가 있어서 정수진에게 숨을 불어넣게 됐다.
▲ '더문'에서도 설경구와 호흡을 맞췄다.
같이 하진 않았다. 이혼한 설정이다. 거기서는 사이는 안 좋지만 정수진과 박동호는 같은 방향을 봤던 동지였고, 길은 다르지만, 박동호이길 바랐던 여자다. 서로 미워한 거만은 아닌 거 같다. 박동호도 정수진을 믿었기 때문에 더 배신감을 느낀 거고. 설경구 배우는 자기 거에 빠져서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었다. 박동호 역을 할 수 있는 그 나이대 배우는 많지만, 그걸 살려낸 건 설경구라는 배우가 아니었나 싶다.
▲ 설경구를 추천했다고 했다.
제가 추천한다고 그 배우를 쓰고, 설경구 씨가 제가 말한다고 하겠나. 작품이 좋고, 배우가 좋으니까 같이 하게 되는 거다.
▲ 배우가 본 정수진은 어땠나.
연기하는 사람도 악당인 줄 알았는데. (웃음) 어릴 땐 남편만 잘되길 바랐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막바지에서 저도 이해가 됐다. 저도 많이 울었다. 정치가 만든 괴물, 희생자 같다. 정수진은 남편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 거 같다. 그 사람이 잘되는 게 자기가 잘되는 거고. 제 세대만 해도 그런 거 같다. 다시 만날 수 없는 매력적인 역할이다.
▲ '퀸메이커' 이어 '돌풍'까지 정치물을 계속하며 정치관이 확립되지 않았나.
정치물을 하면서 눈이 뜨이거나 이런 건 전혀 없다. 판타지고, 인간의 배신 모습을 다룬 작품이다. 박경수 작가님이 백마 타고 온 초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쓰셨다고 하셨는데, 판타지를 채워주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 반전의 반전이 이어졌는데, 놀란 부분은 없었나.
계속 그랬다. 아주 어려웠다. 제가 왜 3번을 봤겠나. 자꾸 제가 숨어있는 그림을 찾는 거 같았다. 대본을 넘기면서 계속 놀랐다. 작품을 받다 보면 감질나게 풀다가 마지막에 감당을 못해서 끝나는 작품이 있는데 '돌풍'은 매회가 마지막 같았다. '끝났지' 싶었는데 뒤엎고, 뒤엎었다. 뒤통수를 쳤다.
▲ 절벽 액션 장면부터 폭넓은 감정연기까지 선보였다.
절벽 장면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저도 깜짝 놀랐던 반전이었다. 이틀 동안 찍었다. 옷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다. 매달리고, 쓰러지고, 날씨도 안 도와주고 힘들었다. 그런데 저는 나중에 비서를 찾아가는 장면을 한 번 더 찍었다. 감정을 마지막을 터트리는 거였다.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 아들들 반응도 궁금하다.
잘 안 본다. 그리고 보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저의 바운더리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남편은 더 들어오는 게 싫다. 집 스타일도 굉장히 독립적이다. 제가 보지 말라고 해도 보고 싶으면 보지 않겠나.(웃음) 정말 안본다.
▲ '부부의 세계' 이후 김영민과도 다시 만났다.
화면으로 봐도 연기가 정말 좋았다. 박근형 선생님은 할리우드 연극배우를 보는 거 같지 않나. 장광, 김미숙 선배님도 모두. 그분들과 연기하며 자극도 많이 받았고. 제 남편 이해영 씨는 '마이더스'에서 제 부하 직원이었다. 그때도 착한 분이라는 걸 알았는데, 계속 성실히 연기를 해오셨고, 그 나이대면 몸도 많이 망가지는데 계속 건강도 유지하고, 연기도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데 전혀 그런 게 아니다. 눈으로만, 입으로만 외운 연기가 아니다. 수만번 대본을 외우고 몸으로 숙성이 된 연기였다. 앞에서 연기하는 걸 보는데, 방구석 1열같이 행복했고, 자랑스러웠다.
▲ 남편 복이 없는 캐릭터를 많이 했다.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을 많이 연기했는데 개인적인 취향일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가 싶기도 하다. 여성으로서 우뚝 선 독립된 모습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 같다. 로맨스 연기는 생각도 안 하고 있다.
▲ 앞으로 뭘 더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을까.
편안한 생활 연기. 저도 잘한다.(웃음) 너무 극적이고 드라마틱한거 많이 하다 보니, 제가 편안한 걸 잘하는데 사람들이 잊으신 거 같다. 이제 잘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 저 다 된다. 센 캐릭터만 하다 보니.
▲ 연기와 함께 '방부제 미모'라는 찬사가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
화장품 모델도 해야 하고, 역할 때문에 식단, 운동도 됐는데 하다 보니 이제 더는 식단, 운동이 외적인 부분만을 위한 건 아니다. 하나의 루틴이 됐다. 그걸 해야 살아있는 게 느껴지고, 그렇게 먹어야 맛있다. 간이 세거나 가공이 많이 된 건 싫어지게 된다. 운동 많이 하는 후배들이 닭가슴살 먹는다고 했을 때 '어떻게 그것만 먹냐' 했었다. 그런데 맛나게 먹는 방법이 있더라. 운동도 너무 싫다. 그런데 해야 개운하다. 매일 하루 30분씩 스트레칭 어떻게 하냐고 하는데, 안 아파봐서 그런 거다. 아프면 한다.
▲ 공개 안 된 또 다른 루틴이 있을까.
단순하다. 그게 행복하다. 평상시 생활도 드라마틱하고 업앤다운이 있다면 힘들 텐데, 평소는 단순하고 심플해서 그게 제 머릿속을 맑게 해준다.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겠지만, 저는 일하지 않을 때 혼자서,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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