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나고 자라 한국으로 입양된 젊은 여성이 국내 복지재단의 도움을 받아 꿈을 지키게 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박혜선 씨(22·가명)는 2018년 베트남인 이모와 한국인 이모부에게 입양돼 한국 땅을 밟았다. 입양되면서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박 씨의 한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베트남과 사뭇 다른 환경에 어려움을 겪었고, 무엇보다 양부모의 불화와 폭력에 시달리다 2019년 집을 나왔다. 입양된 지 1년 만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박 씨가 집에서 나온 뒤 갈 만한 곳은 다니던 교회뿐이었다. 베트남 이주민 사역을 하던 이 교회는 박 씨에게 거처를 내주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줬다.
이후 박 씨는 원하던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이번엔 등록금이 발목을 잡았다. 수백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는 데다 교회가 마련해준 거처에서 더 이상 지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양부모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때 이랜드복지재단 현장 매니저로 활동하는 이정민 씨가 ‘SOS위고’를 통해 박 씨를 돕고 나섰다. SOS위고는 위기 가정 접수 후 3일(골든타임) 내 주거비, 생계비, 치료비, 자립비 등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생필품이 필요한 가정에는 24시간 내 긴급 생필품도 지원한다.
이 씨는 재단 본부를 연결해 박 씨에게 주거생계비 385만원을 지원했다. 이 씨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돈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그는 박 씨와 함께 식사하거나 생일파티도 열어주는 등 정서적 유대감을 쌓았다. 박 씨가 새로 마련한 집 정리를 돕고 사회 공동체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이 씨의 도움을 받은 박 씨는 다문화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빌렸던 보증금을 갚고 생활 기반도 마련했다. 그는 “멘토 역할을 한 이정민 현장 매니저가 절 도와준 것처럼, 다문화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랜드복지재단이 2020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년간 복지 사각지대를 긴급 지원한 사례 100건을 무작위 추출한 통계에 따르면, 갑작스럽게 복지 사각지대에 처하게 된 사유로 주 소득자의 ‘갑작스러운 실직과 사고, 부도’(39%)가 제일 많았다. 이어 ‘가족 구성원의 질병’(31%), ‘주 소득자의 단절’(사망, 가출, 구금시설수용, 이혼·13%) 순이었다.
이 같은 사유에 해당하는 소외 계층은 현행 긴급복지지원법상 제2조의 기준에 따라 긴급복지 생계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여러 문제가 겹쳐 정부 지원이 닿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생겨났다고 재단은 분석했다.
다만 서류 및 재산을 처리할 수 있는 기간 내 누군가의 지원을 받으면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가정이 많을 것으로 조사됐다. ▲기존에 갖고 있던 재산이 압류 중이라 처분이 불가한 경우 ▲재산이 있는 남편 혹은 아내와 이혼 절차를 밟고 있어 경제적 지원은 안 되는 경우 ▲주 소득자와의 갑작스러운 단절이 생겨 집이나 상가를 내놓았는데 팔리지 않는 경우 ▲갑작스럽게 부동산 및 자동차 등의 유산을 상속받았는데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경우(상속 포기도 불가능한 상태) 등에 해당한다.
이랜드복지재단은 그간 SOS위고를 운영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2만2861가정의 일상 회복을 도왔다. SOS위고 현장 매니저뿐 아니라 봉사단, 협력 지자체 등이 한데 힘을 모아 복지 사각지대 발굴과 지원에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재단은 일회성 지원에 끝나지 않고 지속 모니터링을 통해 위기 극복 경과를 확인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랜드복지재단 관계자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가정 대다수는 단기간의 지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긍정적인 일상의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며 “SOS위고를 통해 위기 가정을 빠르게 발굴하고 골드타임 내 이들을 구호하며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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