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호크니 그림이 창고에…검경, 압수품 골치

입력 2024-07-04 17:31   수정 2024-07-11 20:45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범죄자와 고액 체납자로부터 압수한 물품 관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형사 사건은 처리 기간이 오래 걸려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압수물을 보관해야 하는데,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고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간다. 미술품 등 고가 장기 보관 압수물의 체계적인 보관을 위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미술품까지…압수물 보관 ‘난감’
4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의 압수물 수리 건수는 2019년 10만979건에서 2023년 12만2905건으로 4년 새 21.7% 늘었다. 검찰이 자체 창고 또는 외부에 위탁해 보관해야 하는 물건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보관·관리 비용은 수사비에서 지출된다.

압수물은 범죄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증거로 확보한 물품이다. 범죄로 얻은 수익을 몰수하는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확보한 압수물은 사건 처리 이후 소유자에게 즉시 돌려주는 게 원칙이지만 범죄 수익으로 취득한 건 몰수 대상이다. 금전적 가치가 있는 유가 압수물은 법원의 몰수 판결 이후 검찰이 공매를 통해 국고에 환입한다.

사기 등 경제 범죄가 늘면서 압수물 중 고급 승용차, 시계와 같은 사치품이 증가하는 추세다. 살아있는 말 등 동물은 물론 문화재, 미술품 등 보관 방법이 까다로운 압수물도 크게 늘어 수사당국이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검찰이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한 라덕연 호안 대표로부터 압수한 그림이 대표적이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라 대표로부터 압수한 고가 미술품은 22점으로 사설 창고에 월 100만원가량을 지출하며 보관 중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알렉스 카츠 등 유명 해외 작가 작품을 비롯해 ‘물방울’로 알려진 김창열 작가의 그림도 있다.

미술품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갖춘 곳에서 보관해야 하는데 검찰은 이런 환경의 창고를 찾지 못해 한동안 곤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적표현물로 지목돼 검찰이 30년 가까이 압수·보관한 신화철 화백의 ‘모내기’는 일부분이 훼손된 채 2018년 세상에 다시 나오기도 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연구감정센터 대표는 “미술품은 항온·항습이 안 되는 환경에선 변형이 생길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들은 체납자로부터 압수한 차량을 보관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 차량은 처분 전까지 보관해야 해 서울 내 경찰서 주차장마다 압수 차 한두 대씩은 장기 주차돼 있다”고 설명했다.
○길어지는 형사재판...보관비 '줄줄'
형사재판이 끝나기까지 최소 1~2년이 걸리다 보니 수사기관이 보관하는 압수물은 점점 쌓여가고 있다. 법원의 몰수 판결 이후에도 공매에서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보관 기간은 연장된다. 서울중앙지검은 삼성그룹이 정유라 씨에게 뇌물로 제공한 말 ‘라우싱’을 네 차례 공매 끝에 지난해 가까스로 처분할 수 있었다. 구매 당시 7억원이던 말 몸값이 7300만원(낙찰가)으로 떨어지는 동안 검찰은 말 위탁 보관료를 지출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의 압수물이 매년 수만 개씩 나오는 만큼 압수물 보관·관리를 위한 재원 확보 등 체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한다. 박동수 경일대 경찰학과 교수는 “압수물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외부 위탁에 들어가는 비용도 늘고 있다”며 “공매 수익금으로 전용 보관·관리 창고를 마련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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