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중앙은행 무용론'…왜 나오는 걸까?

입력 2024-07-08 10:02   수정 2024-07-08 15:44


세계경제의 향방을 결정지을 변수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 여부가 가장 먼저 손꼽힙니다. 선진 각국의 기준금리는 최근 1~2년 새 고공 행진을 끝내고 하락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이른바 피벗(pivot, 금융정책의 전환)이란 흐름이죠. ‘세계의 은행’ 소리를 듣는 Fed가 여기에 동참하느냐 마느냐는 지구 반대편 한국 가정의 소비와 저축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경 쓰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금리인하와 관련된 Fed 입장은 모호하기만 하고, 듣기에 따라선 오락가락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달 12일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까지 내려오는 데 예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일밖에 지나지 않은 지난 2일, 유럽중앙은행(ECB) 주최 포럼에선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우리의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온도차가 느껴지는 평가를 했어요.

올 초만 해도 Fed가 금리를 세 차례 내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금은 오는 9월 한 차례 정도만 금리를 내릴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Fed가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눈치만 본다는 비판이 나오고, 이럴 거면 Fed가 왜 필요하냐는 무용론(無用論)까지 쏟아집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 4·5면에서 탐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앙은행 최대 임무는 물가와 금융 안정
민간에서 출발한 미국 Fed, 더욱 독립적
미국 중앙은행(Fed)에 대한 이해를 늘리려면 먼저 중앙은행의 필요성과 태동 과정, Fed 설립의 특징 등을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중앙은행의 주요 임무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부의 은행’에서 ‘은행의 은행’으로

중앙은행이 왜 필요한지는 ‘중앙은행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라는 물음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만약 중앙은행이 없다면 각 시중은행이 저마다 돈(은행권)을 찍어내야 합니다. 은행마다 경영 상태와 신뢰도가 달라 이들 은행권을 교환하기 쉽지 않고, 통화 질서에도 큰 혼란이 생깁니다. 외국과의 교역은 물론, 외환시장이 작동하기도 어렵습니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려 해도 국채 발행을 떠안아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경제활동이 거의 정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 나라의 법정통화(법화, fiat money)를 독점 공급하는 중앙은행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중앙은행의 모태는 17세기 유럽에서 등장합니다. 1694년 민간은행이던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은 은행권을 표준화할 수 있는 특권을 국가로부터 부여받습니다. 영국 정부는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했는데, 국채를 사들인 사람에겐 이를 영국은행 주식과 교환할 수 있게 했습니다. 국채를 발행해 영국은행에 떠넘기고, 그 대가로 단일 은행권을 찍어낼 수 있게 해준 겁니다. 이렇게 ‘정부의 은행’이 된 영국은행은 은행 간 지급결제까지 기능을 넓혀 ‘은행의 은행’이 됐고, 1946년엔 국영은행으로 바뀌게 됩니다.

미국 Fed는 한참 뒤늦은 1913년에야 창설됩니다. 프랑스(1800년), 독일(1876년), 일본(1882년)보다도 늦었죠. 이는 자유와 분권에 대한 열망이 강한 미국 사회의 전통 때문입니다. 미국 내 각 주에는 이미 인가받은 은행이 많았는데, 연방 차원에서 은행감독권까지 갖는 중앙은행을 설치하는 것을 반길 리 없었죠. 일정한 요건만 맞추면 어떤 은행이든 자유롭게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자유은행업(freebanking) 시대’가 20세기 초까지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1907년 증시가 급락하면서 ‘트러스트’라는 이름의 신탁은행들의 대출 자산이 급속히 부실해지고 연쇄 도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때 뉴욕 월가 은행가 존 피어폰트 모건이 건전한 은행들도 위험해질 수 있다며 다른 유력 은행가들과 긴급 회동해 구제금융을 갹출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런 경험에서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할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2개 연방준비은행을 기반으로 Fed를 설립합니다. 민간에서 만들어진 Fed는 정부로부터 좀 더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의장은 ‘경제 대통령’이란 별명까지 얻게 됐습니다.

미 Fed, 고용안정에도 중점

그러면 현대 중앙은행의 가장 큰 임무는 뭘까요? 한국은행법 제1조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한은의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침체될 때는 통화공급을 늘려 경기를 살리고, 경기가 과열되면 물가가 오를 수 있어 돈줄을 죄어야 합니다. 이렇게 통화량을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바로 기준금리입니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오를 것 같으면 금리를 올리고, 반대의 경우 금리를 내려 투자와 경제활동이 활성화하도록 합니다.

요즘 들어선 중앙은행이 고용안정, 즉 안정적 경제성장과 관리에도 많은 역할을 하기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가 창궐하던 3~4년 전 한은법의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하자는 법안 발의가 이어지기도 했죠. 미국 Fed는 연방준비법에서 ‘최대고용’ ‘물가안정’ ‘적정장기이자율’ 등 세 가지를 설립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합니다. 호주도 완전고용 유지를 중앙은행의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선진국 중앙은행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리를 주요 정책 수단으로 삼는 중앙은행에 고용안정 임무까지 부과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중앙은행이 정부 정책에 끌려다니는 문제를 낳을 수 있죠. 그래서 영국의 경우,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최우선으로, 그리고 고용과 성장을 하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중앙은행의 태동 과정을 국가별로 살펴보자.

2. ‘은행의 은행’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 공부해보자.

3. 중앙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독립적 의사결정이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자.
"뒷북 대응 일관"…美 Fed에 잇따르는 비판
달러 스마일, 트럼플레이션이 어려움 더해
미국의 금융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는 중앙은행(Fed) 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입니다. Fed 이사회 이사 7명, 연방준비은행장 5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되는 FOMC는 6주에 한 차례씩, 1박 2일에 걸친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 결정, 향후 금리정책 방향 제시(foward guidance)를 합니다.

위원들은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와 금융 전문가들이지만, 비판도 적지 않게 받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두 밀턴 프리드먼도 오락가락하는 Fed 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어 ‘샤워실의 바보들’이라 맹비난했죠. 샤워기에서 찬물이 나온다고 뜨거운 물을 확 틀었다가 너무 뜨거운 나머지 다시 찬물로 급하게 꼭지를 돌리는 장면에 비유한 겁니다. 경제 상황에 면밀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냉탕·온탕식으로 대처하는 아마추어에 머문다는 얘기죠. 프리드먼은 저서 <미국 화폐사, 1867~1960>(1963년)에서도 “중앙은행이 대공황을 키웠다”고도 했습니다.

트라우마 된 Fed의 두 가지 실책

이런 유의 Fed 비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을 풀면서 물가상승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Fed는 이를 일시적 현상이라 보고 금리 인상을 미뤘습니다. Fed는 물가상승률이 8%까지 근접한 2022년 3월에야 제로금리 정책을 변경하고 금리를 올렸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미국 통화정책 역사상 최대 실수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피벗(금리정책 전환), 즉 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1년 반 전부터 제기됐는데, 아직도 Fed는 서두를 필요 없다는 식입니다. 지난달 FOMC 회의 때는 시장의 예상과 달리 더욱 ‘신중 모드’로 돌아섰습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정책을 완화하는 데 필요한 확신을 얻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행태를 이해하기 위해선 Fed의 금리정책 역사 속 두 가지 실수를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1929년 미국 경제가 침체하기 시작하자 당시 매리너 에클스 Fed 의장이 금리를 내렸는데요, 이후 물가가 오르자 이번엔 금리를 급하게 올렸습니다. 문제는 이 결정이 대공황을 재촉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프리드먼의 비판과 같은 맥락이에요, 이를 ‘에클스 실수’라 부릅니다. 2년 전 Fed가 금리 인상에 주저한 것은 아마 에클스 실수가 떠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이 스태그플레이션(경기하강 속 물가상승)을 맞아 금리를 연 17%까지 올리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물가가 잡힐 기미가 보이자 너무 급하게 금리를 내려 물가가 다시 뛰기 시작했어요. 이른바 ‘볼커의 실수’입니다. Fed가 피벗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데는 볼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고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능성 높아지는 트럼플레이션

달라진 경제 상황이 금리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미국 경제가 호황일 때뿐 아니라 불황일 때에도 달러가 강세를 띤다는 ‘달러 스마일(dollar smile) 이론’이 그런 예를 보여줍니다. 이는 달러 가치가 ‘불황 때 강세, 중간 지점일 때 약세, 호황일 때 강세’를 보여 마치 웃음 짓는 모양이 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호황일 때 경기 과열을 막으려고 미국 금리를 올리면 강달러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코로나19 팬데믹 때처럼 경기가 악화할 때 달러화는 강세 기조로 돌아섭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이때 정부가 돈을 많이 푼다고 해도 금리 인상을 결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자칫 달러 가치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수 있고, 국제수지 적자 등 문제를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다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말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 중국 등의 수입품에 관세를 대폭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는 것도 금리 인하 결정을 주저하게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수입관세 증대로 인한 물가상승, 즉 ‘트럼플레이션(trumplation)’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금리를 낮추는 피벗 결정이 자칫 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고용시장 강세로 인해 여간해선 물가가 낮아지지 않는 ‘끈적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을 경험 중인 미국 내 경제 상황도 금리 인하를 어렵게 합니다.
NIE 포인트
1. 미국 Fed의 체계와 금융정책 결정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2. Fed가 금융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역사를 공부해보자.

3. 트럼플레이션이 세계경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각국 정부가 이를 어떻게 협력하고 풀어야 할까?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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