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그룹 에스파(aespa) 콘서트에는 '깜짝 신인' 등장해 화제가 됐다.
에스파의 데뷔곡 '블랙맘바(Black Mamba)'를 떠올리게 하는 미끈한 뱀 비늘 질감이 대형 스크린 가득 채워졌고, 초록색 레이저를 활용해 해당 배경에 균열이 생기면서 등장한 신인은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nævis)였다.
나이비스가 등장한 콘서트 말미 연출은 멤버들의 본 공연 못지않게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혔다.
대형 기획사들의 버추얼 아티스트 론칭이 본격화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에스파 콘서트에서 나이비스를 선보이며 하반기 데뷔를 가시화했다. 하이브 자회사인 수퍼톤은 최근 버추얼 걸그룹 신디에잇을 데뷔시켰다. 지니뮤직은 이세계아이돌을 흥행시킨 패러블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버추얼 아티스트 사업 확대를 추진, 현재 보이그룹 싸이코드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가요계 버추얼 그룹의 성공 사례가 잇따르며 관련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들의 활동 범위가 음악방송, 오프라인 콘서트, 팝업 스토어 등으로 확대하면서 비교적 뚜렷한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는 모양새다. 강력한 팬덤 파워를 자랑하며 음원 차트에서도 호성적을 거두고 있는 플레이브를 비롯해 넷마블 자회사인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합작해 만든 메이브, 딥마인드플랫폼이 내놓은 핑크버스 등이 대중에 공개된 상태다.
초기 버추얼 그룹은 '가상 인간'이라는 장벽 때문에 대중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팬덤이 일반 아이돌급으로 성장했다. 최근 '위버스콘'을 다녀왔다는 30대 A씨는 "현장에 플레이브 팬들이 몰려 있는 걸 보고 놀랐다. 플레이브가 인기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팬들을 보니 신기했다"고 전했다.
버추얼 그룹 중 가장 두드러지는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팀으로 꼽히는 플레이브는 태생적 한계를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앨범 판매량 증가 속도는 압도적이다. 지난해 데뷔 당시 초동(발매 첫 주 음반 판매량) 7만5000장을 기록했던 이들은 이후 미니 1집으로 초동 20만장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미니 2집으로는 초동 57만장을 넘겼다. 실존하는 팬덤 화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수치다.
이들의 성공은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엔터 사업은 연예인의 사생활 이슈에도 회사가 휘청이는 등 인적 리스크가 큰 분야라서 이를 방어할 수 있는 라인업으로 버추얼 아티스트가 각광받고 있다.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소속 연예인 관련 부정적 이슈가 발생하면 광고 계약에도 차질이 생기고 회사 주가가 내려가는 등 연쇄적으로 문제가 이어진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언제 어디서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것"이라면서 "가상 그룹은 일단 이런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냐. 그 자체로도 아주 큰 장점"이라고 짚었다.
다만 감성 영역에 해당하는 팬덤 비즈니스에 깊숙이 파고들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술은 완전한 이성 영역이지 않냐. 캐릭터를 내세우는 거라 팬덤을 형성하는 게 쉽진 않다. 초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확실한 장치가 필요하다. 기획 단계에서 팀 콘셉트 설정뿐만 아니라 아주 미세한 비주얼 표현까지도 신경을 쓰고, 공개 방식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플레이브 역시 캐릭터 뒤에 실존 인물을 둬서 멤버별로 '인간적 면모'를 부각했다. 연습생 기간부터 시작된 서사가 팬덤 결집 효과로 이어졌다.
SM도 에스파와 세계관을 연결하는 신중한 접근 방식을 택했다. 에스파 데뷔 당시부터 나이비스는 에스파의 '조력자'라는 이미지를 부여받았던 바다. 이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에스파의 콘서트에서 나이비스의 첫 무대를 공개했다. 스크린에 착시 현상으로 입체감을 구현하는 아나모픽 3D 기법으로 인간의 표정과 움직임을 디테일하게 묘사해 놀라움을 안겼다. 무대 위에서 춤추던 나이비스는 전혀 이질감 없이 에스파 멤버들과 나란히 서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반면 인간이 기술로 구현해내는 작업인 만큼 독창성이 시험대에 오르기도 한다. 하이브 자회사 수퍼톤은 신디에잇을 소개하며 '촐싹맨'이라는 캐릭터도 공개했는데 해당 캐릭터가 '침착맨'의 얼굴과 유사하다고 지적받았다. 신디에잇의 멤버 '카나리'의 이름도 에스파 '카리나'와 비슷하며 둘의 MBTI와 키가 동일하다는 점도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는 카나리와 카리나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게시물까지 등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동시기에 버추얼 그룹이 쏟아지면 또 어느 순간 시장이 과포화될 수 있다. 비교되는 상황만으로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면서 "플레이브 등이 단순히 기술로 만들어진 팀이라는 인식을 깨는 중이었다. 버추얼 그룹이라 할지라도 고유의 색깔을 내면서 이 분위기를 이어가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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