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그건 사고였어요"는 무책임한 변명

입력 2024-07-05 18:26   수정 2024-07-06 00:49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선 역주행 차량이 인도에 있던 행인을 들이받아 9명이 사망했다. 지난달 24일에는 경기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1명이 죽거나 다쳤다. 오는 15일이면 충북 오송 지하차도가 폭우로 침수돼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 딱 1년이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사고가 누군가의 비극적 소식을 알린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는 과거 자전거 교통사고로 연인을 떠나보냈다. 당시 그의 연인을 죽게 한 가해 차량 운전자는 재판에서 “일어난 이 사고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싱어의 귓가에 닿은 ‘사고’란 단어는 무책임했다. 피해자가 겪은 일련의 비극을 사고로 규정하는 건 마치 예측이나 예방이 불가능한 일을 무작위하게, 개인의 운이 나빠서 당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줬다. 그때부터 싱어는 사고에 천착하게 됐고 <사고는 없다>라는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건 사고였어요”란 변명은 문제의 원인을 개별 사건과 개인적 요소 안에서 찾도록 만든다. 사건이 발생한 환경과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기보다 우발적인 실수나 개인의 잘못에 집중하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과실(실수)이 관여하지 않는 사고는 거의 없지만, 그 과실을 유발하는 건 위험한 조건(환경)”이라고 강조한다.

예컨대 제한속도를 위반하는 건 인간의 과실이지만, 과속을 하기 좋게 설계된 도로는 위험한 조건이다. 미끄러지는 건 인간의 과실이지만,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바닥은 위험한 조건이다.

사고는 차별과 불평등 문제와도 깊게 연관돼 있다. 저자는 인종·민족·계층·성별 등에 따라 사고를 당할 확률과 사고로 죽거나 부상을 입을 확률, 사고로 비난과 처벌받을 확률 등이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흑인과 라티노 보행자는 백인 보행자에 비해 무단횡단 딱지를 떼일 가능성이 크고, 그들이 차에 치여 사망하는 경우 운전자는 백인을 쳤을 때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잘못이나 운에 기대 사고를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차별은 사회에서 특정한 종류의 사고가 반복되도록 내버려두는 요인 중 하나다.

저자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안의 사람보다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구조를 조사하고, 처벌이 아니라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같은 종류의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혹은 다른 사람이 불가피하게 동일한 실수를 하더라도 사망과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아지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령 일터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면 사고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 바닥재 등 작업 환경을 보수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교통사고 후 운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도로 설계 재정비를 간과해선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 논리다.

이 책은 반복되는 재난과 참사를 막기 위해선 ‘사고’란 단어를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운 좋게 나는 그것을 피했다는 안도감 대신 왜 그때 그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막을 수 있었을지 등에 대해 경계심과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냐면 그 어떤 것도 우연히 혹은 완전한 실수로 일어나는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고는 없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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