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당장 삼성전자는 ‘AI 반도체(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에 아직까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납품하지 못하고 있다. HBM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AI 반도체를 만들 때 쓰이는데 일반 D램보다 수익성이 월등히 높다. 현재 SK하이닉스만 엔비디아에 납품하고 있다. 메모리 최강자를 자부해온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선 추격자 신세인 것이다. 급성장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뒤지면 아무리 범용 D램에서 주도권을 쥐어도 미래가 밝다고 보기 어렵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은 더 심각하다. 작년 4분기 삼성전자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1.3%로 대만 TSMC(61.2%)와 비교가 안 된다. 삼성전자는 한국과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을 지으며 추격전에 나섰지만 충분한 수주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반도체 제조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아무리 이익이 많아도 번 돈의 대부분을 재투자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메모리 불황으로 반도체 부문에서 15조원 가까운 적자를 냈다. 올해 흑자를 낸다고 방심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 유럽까지 보조금과 각종 정책 지원을 통해 반도체 전쟁에 뛰어들었다. 자칫하면 한국이 반도체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 그런데도 반도체 투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고 삼성전자 노조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깜짝 실적에 취해 위기를 직시하지 못하면 진짜 위기가 닥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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