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엔 대부분의 전문가가 올 2분기 원·달러 환율을 1200원대로 예상했는데, 실제 환율은 이보다 무려 100원 이상 높았습니다.”
4대 그룹 계열 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7일 “최근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높아 사업과 재무 전략을 짜기가 너무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 환율 움직임은 대기업 ‘재무통’ 임원이나 외환당국자 같은 전문가들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제품 수출 호조로 국내에 들어오는 달러가 두둑한 상황에서도 원화 가치가 큰 폭의 약세를 띠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외환시장에 구조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올 들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동결된 가운데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이 같은 한·미 양국의 실질금리 차이가 가장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시장 금리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초 여전히 견조한 미국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제조업지수와 고용지표가 잇따라 발표되자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연 4.81%)으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하루(10월 4일) 동안 14원20전 급등하는 등 아시아 증시와 통화가치가 동반 폭락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약 한 달 후 둔화된 미국의 고용지표가 나오자 고공 행진하던 원·달러 환율이 떨어졌다. 불과 3거래일 동안 원·달러 환율이 60원(1357원30전→1297원30전) 급락한 날도 있었다.
미국 채권시장은 올 들어서도 미국 정부와 Fed의 재정·통화정책 전망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널뛰기하고 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달 27일 대선 TV 토론회 직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자 사흘 연속으로 뛰면서 연 4.5%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후 고용 둔화 조짐을 보이는 경제 지표가 나오자 하락세로 돌아섰다.
일본은행은 이런 글로벌 흐름과 달리 통화정책을 긴축 기조로 선회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전환 속도가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자 엔화 가치가 연일 하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달러 환율은 작년 말 141엔에서 지난 5일 161엔으로 20엔(14.2%) 올랐다. 시장에선 엔화 추가 약세에 베팅하는 투기 세력 때문에 환율 변동폭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전문가들은 Fed가 2022년 긴축 기조로 돌아선 뒤 아시아 국가 통화의 동조화 현상이 강화되면서 원화 가치 하락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견조한 미국 경제와 이로 인해 유입되는 전 세계 투자금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강달러 현상은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좌동욱/황정환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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