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이슬람 종교기구가 행정부와 의회 등 공화국기구를 감독·통제하는 독특한 통치체제를 갖고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은 명목상 2인자에 불과하고 라흐바르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한다. 12인의 헌법수호위원회와 최고지도자를 뽑는 전문가회의, 혁명수비대가 신정(神政)을 뒷받침한다.
서방과의 핵 합의 복원, 경제난 해소, 히잡 착용 완화 등을 내건 온건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제14대 이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슬람 원칙파와 ‘1 대 5의 싸움’을 벌인 1차 투표 때만 해도 구색 맞추기용 후보라는 말을 들었던 그는 예선 깜짝 1위에 이어 결선에서도 54.8%를 득표, 45.2%를 얻는 데 그친 사이드 잘릴리를 꺾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경제난과 억압 사회에 지친 청년들과 중도층을 투표소로 이끌었다.
역대 개혁파 대통령이 그러했듯 페제시키안의 한계는 분명하다. 당장 하메네이는 “라이시의 길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5월 헬리콥터 사고로 숨진 전임 대통령처럼 자기 말을 잘 들으라는 얘기다. 의석 70%를 원칙파가 장악하고 있고 핵 합의를 파기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져 최대 과제인 경제 제재를 풀 길이 험난해 보인다. 아제르바이잔계 아버지, 쿠르드계 어머니를 둔 페제시키안이 이번 대선에서 ‘소수파의 반란’에 성공했듯 겹겹의 견제를 뚫고 이란의 봄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