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는 ‘기업이 자신의 경제적 실질을 가장 잘 안다’는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기업과 회계 전문가들이 충분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판단했다면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회계처리도 인정한다. IFRS17이 도입된 후 보험사들이 서로 다른 회계처리 방식을 쓴 이유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소멸계약 회계처리’ 이슈도 마찬가지다. 보험사들은 보험계약을 유사계약군끼리 묶어 관리하고 있는데, 계약집합에서 발생한 금리 변동 효과를 기타포괄손익으로 분류한다. 이때 계약집합 가운데 일부 계약이 해약, 사망 등으로 소멸하면 보험사들은 남아 있는 기타포괄손익을 당기손익으로 즉시 인식하거나(A안), 계약집합의 듀레이션(만기)에 걸쳐 나눠 반영했다(B안). 최종적인 합산 이익은 A안과 B안이 동일하다.
보험사들은 회계법인 등의 자문을 통해 각자 상황에 맞는 회계처리 방식을 썼다. 삼성생명(A안)과 삼성화재(B안)도 서로 다르게 회계처리를 해왔다. 삼성생명은 작년까지 A안으로 회계처리를 했지만 올 1분기부터는 B안을 채택했다. 업계에선 “A안과 B안 모두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금감원은 최근 “B안은 맞고 A안은 회계 오류”라고 결론 내렸다.
금감원은 “IFRS17 기준서에 나온 내용대로 판단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한국회계기준원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질의회신 연석회의’에서 결정한 사안”이라며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보험담당 스태프에게도 자문하는 등 금감원이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마다 서로 다르게 회계처리를 하면 재무제표 비교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당장 보험사들의 재무적 영향은 크지 않다. 회계 오류에 따른 금액 변동이 크다면 과거 재무제표까지 소급 적용(정정 공시)해야 하지만, 대부분 보험사는 금액이 수십억~수백억원으로 크지 않아 향후 재무제표에만 반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보험사 검사에 착수했을 때 과거 회계 오류를 제재할 가능성이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이런 이슈가 수십 개는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금감원은 ‘공시이율 예실차에 따른 보험부채 변동 회계처리’에 대해서도 조만간 해석을 내릴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는 금감원 판단에 따라 1년 치 순이익을 토해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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