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HD 감독(55)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오점으로 남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회상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당시 홍 감독은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소방수로 투입돼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1년 준비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건 욕심이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홍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엿 세례’를 받아야 했다. 1990년 21세의 나이로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 20년 넘게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살았던 그가 한순간에 한국 축구의 역적으로 낙인찍힌 순간이다.
그랬던 홍 감독이 10년 만에 한국 축구를 위해 다시 나섰다. 대표팀 감독으로 계약 기간은 2027년 1~2월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까지다.
대한축구협회는 8일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의 브리핑을 통해 홍 감독을 선임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이사가 언급한 항목은 △빌드업 등 전술적 측면 △원팀을 만드는 리더십 △연령별 대표팀과 연속성 △감독으로서 성과 △촉박한 대표팀 일정 △대표팀 지도 경험 △외국 지도자의 철학을 입힐 시간적 여유의 부족 △외국 지도자의 국내 체류 문제다.
이 이사는 지난 2일 유럽으로 출국해 최종 후보에 오른 거스 포옛 감독(우루과이), 다비드 바그너 감독(독일)을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5일 한국으로 돌아온 뒤 마지막으로 만난 게 홍 감독이다. 이 이사는 5일 밤 11시쯤 K리그1 수원FC전을 마치고 경기 성남의 자택으로 귀가한 홍 감독을 찾아가 설득했다고 한다.
감독 선임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이 이사가 판단했을 때 최적임자는 홍 감독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패를 겪기도 했으나,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지휘하는 등 국내 지도자로 각급 대표팀에서 역대 가장 성과를 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2년과 지난해 울산의 창단 첫 K리그1 2연패를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홍 감독을 잘 아는 주변 축구인과 관계자들도 한목소리로 그가 적임자임을 말한다. 선수 시절 국가대표로 한솥밥을 먹었던 고종수 전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은 홍 감독에 대해 “선수 시절 때부터 강력한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뭉치는 역할을 했다”며 “지도자로서도 모두가 존경할 만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경험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런던 올림픽에서 코치로 홍 감독을 보좌했던 박건하 전 수원삼성 감독은 “선수 시절 경력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도 올림픽과 월드컵을 지휘하면서 경험적인 능력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며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팀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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