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은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안보실 행정관 ‘정원’(이선균)과 유학 가는 딸 ‘경민’(김수안)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정원은 경민을 배웅하기 위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를 뚫고 공항으로 향하던 중 최악의 연쇄 추돌 사고를 맞닥뜨린다.
사고 소식을 듣고 반려견 ‘조디’와 함께 사고 현장을 찾은 렉카 기사 ‘조박’(이선균), 군사용 실험견들을 극비리에 이송 중이던 ‘양 박사’(김희원)를 비롯해 노부부 ‘병학’(문성근)과 ‘순옥’(예수정), ‘미란’(박희본)과 ‘유라’(박주현) 자매까지 공항대교 한복판에 모두 발이 묶이고, 다리의 모든 출입이 전면 통제된 가운데 설상가상 통신까지 끊기고 만다.
완벽하게 고립된 상황 속에서 헬기 추락과 유독가스 폭발 등 잇따른 재난이 이어지며 공항대교는 붕괴 위기에 놓이고, 사고로 인해 케이지에서 탈출한 군사용 실험견들이 모든 생존자를 타깃으로 인식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공격이 시작된다.
사건의 발단이 되는 짙은 안개는 보이지 않는 위험을 예고하는 동시에, 기존 재난 영화들과는 다른 독특한 무드를 조성하며 극의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여기에 시시각각 덮쳐오는 연쇄 재난의 요소를 더해 마치 게임 스테이지처럼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다리 위에 고립된 이들이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특히 우리가 일상에서 함께 생활하고, 친근하게 여기는 개라는 존재가 가장 위협적인 공포의 대상으로 변하는 설정이 더해졌다. 공격의 방식도, 이유도 예측할 수 없는 실험견들의 등장은 또 다른 재난을 불러일으키며 강력한 서스펜스와 함께 쫄깃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탈출'의 연출을 맡은 김태곤 감독은 8일 "항상 지나던 공항이 어떤 요소로 인해 변질되고 위험으로 다가왔을 때 얼마나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며 "여기에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면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1년 만에 개봉하게 됐다. 김 감독은 "감독의 꿈의 무대라고 하는 칸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영화를 봤는데 조금만 더 하면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며 "다시 후반작업을 하게 됐고, 개봉 시기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탈출'은 극한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캐릭터들의 팀플레이가 재미 요소로 작용한다. 고 이선균은 '정무적'인 안보실 행정관 정원 역을 맡아 재난 현장을 맞닥뜨린 후 극한의 상황 속에서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 김수안은 이선균의 딸 경민으로 등장해 극의 중심을 이끌었다.
주지훈은 장발 머리를 휘날리며 렉카 차를 모는 조박을 연기해, 반려견 조디와의 깜찍한 팀플레이를 선보였다. 신스틸러 김희원이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책임 연구원 양 박사로 분해 특유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프로 골퍼 유라와 매니저이자 언니 미란 역엔 박주현과 박희본이 이름을 올렸다.
김태곤 감독은 "이선균 형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영화 준비할 때부터 현장서도, 모든 장치와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저도 놓친 부분을 이선균 형이 머리 맞대고 동선, 캐릭터 감정을 논의를 많이 했다. 그런 요소 하나하나 질문과 답을 하며 영화 전체의 답을 찾아갔다"고 회상했다.
김수안은 "이선균 선배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경민이는 날카로운 말을 많이 하고 자유분방했다.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풀어주려 노력해주셨고, 즐겁고 자유롭게 연기하고 현장에 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지훈은 이 영화에 대해 "일상적인 캐릭터와 그럴 수 있을 법한 이야기가 버무려져 긴장, 스릴감이 다가오는 빠른 전개의 작품"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특히 제 캐릭터는 기능성을 가진 캐릭터라. 연기하기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출연 이유를 공개했다.
망가짐을 불사한다는 반응에 대해 주지훈은 "저는 망가지냐 아니냐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며 "극 자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면 주저 없이 즐기는 편이다. 감독들이 저라는 배우를 간극이 넓게 쓰고 계셔서 즐겁게 연기하고 있다"고 소신을 전했다.
그는 조박 캐릭터에 대해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인물로 훌륭한 사람이라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90년대 초중반 가스 배달하는 무서운 형들과 동대문, 이태원에서 보이던 형들 이미지를 구현하면 캐릭터가 잘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극 중 주지훈은 트렁크에 몸을 구겨 넣어 대피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와 관련해 "그 부분을 CG로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188cm인데 진짜 트렁크에 들어가서 찍었다. 경추에 무리가 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영화의 백미는 100중 추돌 사고를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모형이 아닌 실사 수준의 세트로 짓기 위해서 광양 컨테이너 선착장에 200m의 도로를 세트로 제작했다. 또 국내에서 가장 큰 1300평의 세트장을 섭외해 각 재난 상황별로 길이 80m, 폭 30m씩 구획을 나눠 순차적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배우들은 연기하는 데 세트장의 도움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주지훈은 "세트장 규모를 보고 놀랐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감사했다"며 "급박하게 뛰어가는 장면에서 실제로 아주 긴 거리를 뛰었고, 실제 차량도 운행할 수 있어 엄청나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억지로 집중하거나 끌어올리려 하지 않아도 되는 감사한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김희원은 "세트에 아스팔트를 깔고 다리를 지을 줄 몰랐다. 분장실에 있다가 걸어오는 데 힘들었다. 찍기 전에 실제 대교를 걸어서 가봤다. 가도 가도 끝이 없더라. 세트에서도 마찬가지 느낌을 받았다. 공간에 섰을 때 그 마음이 됐다"고 거들었다.
박희본은 "출근할 때는 맑은 얼굴로 갔다가 분장하고 세트 문을 여는 순간 안개가 자욱하고 아스팔트 위에 여기 와 있네? 라고 할 정도로 완벽한 세트라고 자부했다. 노력은 했지만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독립영화를 하던 시절부터 저도 모르게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며 "좀 다른 식의 재난, 장르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고, 최고의 스태프들이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이런 블록버스터급 재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지훈은 마지막으로 "'탈출'은 여름에 걸맞은 팝콘 무비"라며 "관객들에 즐거운 긴장감을 선사해드리고 싶었다. 영화관에서 즐겨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오는 12일 개봉.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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