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큐셀이 올해 하반기 유럽에서 유럽시장내 사활을 건 '태양광 모듈+에너지저장장치(ESS)+전기차 충전기'를 결합한 신제품 ‘큐홈 G4’를 출시한다. 태양광 셀 산업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화큐셀은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가정용 태양광·ESS 결합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그동안 미국, 호주 시장 등에서 함께 제품을 팔며 동맹관계를 구축했던 LG에너지솔루션이 아닌 중국 배터리회사와 손을 잡기로 했다. 유럽현지 회사들조차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가격경쟁력 및 기술력을 이용하기 위해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다.
13일 태양광·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한화큐셀은 신제품 큐홈 G4에 들어가는 ESS, 인버터, 전기차 충전기 등을 중국 배터리사 폭스ESS에 주문자위탁생산(OEM) 방식으로 생산을 맡기기로 했다. 모듈만 한화큐셀이 자체 생산한다. 서로의 니즈가 맞은 결과다. 현재 중국 회사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및 인버터 생산원가는 경쟁 국가업체들에 비해 2~30% 수준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저렴하게 모듈 이외의 상품을 공급받아 한화큐셀이 보유한 유럽내 네트워크와 결합하면 유럽시장 공략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 업체 입장에선 중국 시장내 지나치게 치열한 경쟁을 벗어나 해외로 진출하고자 하지만 해외 네트워크가 부실하다는 약점이 있다. 해외 네트워크를 갖춘 최상위 몇몇 업체를 제외하곤 한국기업과 손을 잡고자 하는 유인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한화큐셀 관계자는 "협상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수십개의 중국 업체들이 오퍼를 해왔다"며 "자신들끼리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가격, 정보공유 등과 관련해 매우 좋은 조건으로 협상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중국 업체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건 한화큐셀 뿐만이 아니다. 포스코 그룹은 2차전지 벨류체인 확대를 위해 중국 리싸이클링 회사들과 기술협력 및 합작회사 운영을 하고 있다. 인력교류도 하고 있는것으로 전해진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배터리 부품회사들과 관계를 넓혀가고 있다. CATL, BYD 등과 가격경쟁을 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선 반응이 엇갈린다. 기업의 본질적 목적인 이윤추구를 위해 영리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반면, 그동안 이어져온 혹은 이어져야할 한국 기업간의 동맹관계에 균열이 나면서 국가산업적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는 손해가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배터리, 태양광 등 미래 신산업에서 중국과 정면승부를 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 한국내 벨류체인만을 이용해 글로벌 경쟁을 하는건 힘든 과제다. 중국과 생산비 차이가 큰데 중국업체의 기술력도 한국 수준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관세 및 각종 수입금지 등 미 정부의 대중제재를 활용하고 있다. 관세, 인플레이션 방지법(IRA)를 고려하면 중국 기업과 협력은 오히려 '독'이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외 시장이다. 미국과 비견되는 유럽에선 실질적인 무역장벽 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맹주국가들이 대중 무역제재에 부정적인데다, 관세 등 조치가 유럽의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순수 제품만으로 경쟁해야하는 우리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원가경쟁력과 기술을 갖춘 중국업체와의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이유다.
막대한 양의 명품, 항공기 등을 중국에 판매하고 있는 프랑스도 비슷하다. 최근 EU에서 대중관세가 논의되고 있지만 실제 실행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책적 제재를 기대하기 힘들다면 제품만으로 정면승부해야 한다. 유럽 태양광·ESS 등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포기할수 없는 시장이기에, 경쟁을 위해서는 제품을 20~30%씩 싸게 만드는 중국의 가격경쟁력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치열한 내부경쟁도 한국업체에 유리한 조건이 되고 있다. 중국 후발업체들이 서로 한국기업들과 손을 잡고자 하니 우리 기업 입장에선 협상력이 생기고 있다는 의미다.
한화큐셀은 폭스ESS와 이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격은 물론, 정보보안 요구, 소프트웨어 사용권 등에서 전례없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화큐셀 관계자는 “협력하고자하는 중국업체의 제안이 50곳이 넘어 롱리스트, 숏리스트 등을 만들어 검토했고, 유리한 조건을 역제안한 뒤 받아들이는 곳과 계약을 했다”고 전했다.
포스코-화유코발트간의 배터리 리싸이클링 분야 협력도 중국 내부 경쟁을 이용해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낸 사례다. 포스코 그룹은 2차전지 벨류체인 확대를 위해 리튬, 니켈 등을 공급받을 수 있는 폐배터리 리싸이클링 부문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중국 화유코발트와 함께 세운 포스코HY클린메탈의 전남 광양 공장은 지난해 6월 가동을 시작해 올해 대폭 생산량을 늘리려 하고 있다. 한국과 손잡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화유코발트 열망이 큰만큼 포스코측이 요구한 원가를 낮출 수 있게한 기술의 이전 등에 대한 조건을 모두 받아들였다.
현재 중국인인 궈스란 CTO(최고기술책임자)가 포스코HY클린메탈로 파견돼 있는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니켈, 전구체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는 에코프로와 거린메이 역시 유사한 사례다.
한국과 중국 업체가 협력관계를 맺는 사례가 향후에는 더욱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개별 기업 입장에서 최우선은 생존과 이윤추구인 만큼 가격경쟁력과 기술력이 있는 중국업체와 손잡는게 유리하다면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라면서 “다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내 벨류체인이 부실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이를 고려한 통합적인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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