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고급 주거용 오피스텔 부지는 최근 글로벌 자산운용사에 감정가(2308억원)의 67%인 1550억원에 매각됐다. 디벨로퍼(시행사)가 1700억원대 브리지론(토지비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공매로 나온 사업지다. 한 시행사가 지식산업센터로 개발하기 위해 2022년 사들인 서울 금천구의 쇼핑몰 부지는 작년 말 브리지론 만기 연장에 실패했다. 몸값이 2602억원에서 980억원으로 쪼그라들 때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계가 고금리와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매출은 2년 새 반 토막 났고, 문을 닫는 업체도 속출하고 있다. 개발업계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경색과 미분양에 허덕이며 시공사 부실과 주택 공급 절벽 등 연쇄 위기를 불러일으킬 뇌관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4개월째 상승세를 보이는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과 달리 개발업계에는 빙하기가 지속되고 있다.
10일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30대 부동산 시행사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4개사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2년여간의 PF 부실과 미분양 누적 등으로 전체 시행사의 80%가량이 적자의 늪에 빠졌다고 보고 있다.
개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 개발업 등록사업자의 전체 매출은 28조7011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45조6259억원)과 2021년(54조6832억원)에 비해 각각 37.1%, 47.5% 쪼그라들었다. 시행사의 사업 면적은 2022년 2465만769㎡에서 지난해 1935만6259㎡로 뒷걸음질 쳤다. 전체 등록사업자도 감소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1년간 폐업한 개발업체는 320곳에 달한다.
대형 디벨로퍼도 상황은 좋지 않다. 2021년 신규 부지 매입에 1조원을 써 몸집을 불린 DS네트웍스는 최근 제주 화북상업지역 주상복합 용지를 손절하고, 경기 화성 병점복합타운 부지와 파주 운정 주상복합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반환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2022년 1135억원에서 작년 456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안강개발은 지난해 4년 만에 당기순이익이 적자 전환했고, 일레븐건설은 당기순손실 규모가 1029억원까지 확대됐다.
디벨로퍼는 브리지론을 일으켜 땅을 사고 인허가를 받은 뒤 본PF로 전환한다. 다락같이 오르는 금융 비용도 큰 부담인데, 더 무서운 건 돈줄이 아예 끊기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PF 옥석 가리기를 하면서 만기 연장과 본PF 전환이 불발되는 사업장이 급증할 전망이다. 한 시행사 대표는 “최근에는 연체가 발생하기 전에도 금융권으로부터 자금 회수 압박이 들어온다”며 “지식산업센터 등 비보증 물건은 PF가 전혀 안 되고, 주거시설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PF 보증이나 신탁회사 보증이 안 돼 사실상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고 토로했다.
개발업의 위기는 디벨로퍼에만 그치지 않는다. 책임준공 확약을 맺은 건설사로 리스크가 전이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경기 이천 군량리 물류센터가 준공됐지만, 시행사인 SPC군량물류는 분양 부진으로 올 4월 파산을 신청했다. 그 결과 연대보증을 선 DL건설이 지난달 1220억원의 빚을 떠안았다. 동양(음성 물류센터, 1800억원), HDC현대산업개발(안성 물류센터, 995억원), 웰크론한텍(시흥 생활숙박시설, 520억원), 까뮤이앤씨(양양 생활숙박시설, 402억원) 등도 시행사 채무를 짊어지게 됐다.
이인혁/유오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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