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약 5개월 동안 경제계·언론계·종교계를 포함해 150여 차례에 걸쳐 수많은 국민을 만났다. 지난 5월부터는 전국을 돌며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과 신혼부부, 임산부, 난임부부, 맞벌이 가족 등을 만나고 있다. 서울부터 인천, 홍성, 포항의 어린이집부터 중소기업까지 지역과 현장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제각각이지만 가장 많이 들은 목소리가 육아휴직 문제다. 육아휴직을 쓰면서 겪은 어려움과 복귀 이후의 불이익을 토로하면서 맘 놓고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화답하는 마음으로 지난달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가장 주력한 부분이 ‘일·가정 양립’ 환경 조성이다. 육아휴직을 3회까지 나눠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아이들 방학 때도 돌봄 걱정이 없도록 2주 단위로 쓸 수 있는 단기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했다. 육아휴직 기간을 최대 1년6개월로 늘리고, 급여도 최대 250만원으로 대폭 올렸다. 하지만 정책을 잘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정책이 잘 쓰일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육아휴직을 누구나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구상한 이유다.
현장의 문턱은 늘 높다. 육아휴직은 오랜 관습을 바꾸는 일이다. 우리나라 남녀의 육아휴직 이용 기간은 평균 8.5개월과 7.5개월이다.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자는 제안이 많지만 실제로는 1년도 채우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육아휴직을 아예 못 쓰는 사람도 많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육아휴직 통계 결과’에 따르면 2022년에 태어난 아이 100명의 부모 가운데 육아휴직을 쓴 부모는 35명에 불과했다.
육아휴직 사용률이 왜 이렇게 낮을까.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직장 환경과 문화가 원인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육아휴직을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응답한 사업체는 52.5%에 그쳤다. ‘동료와 관리자의 업무 가중’과 ‘직장 분위기나 문화’가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한 주된 이유였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정부는 필요하면 누구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통합해 신청하게 했다. 회사가 14일 이내에 서면으로 허용 여부를 고지하지 않으면 육아휴직이 자동으로 승인되는 방식도 추가했다. 육아휴직 대체 인력을 인건비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지원금도 월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늘려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였다.
정책이 실생활에 빠르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협조가 중요하다. 육아휴직이 승진이나 경력 관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조직 문화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인력 부족 시대가 바로 코앞이다. 가족친화적이고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이 보장되는 기업문화와 인사노무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젊은 인력을 유치하고, 유지하기 어려운 게 ‘뉴노멀’이다.
일하는 엄마 아빠가 직장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놓치지 않도록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합심한다면 누구에게나 당당한 육아휴직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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