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믿고 250만원 빌려줬는데…한 달 만에 '날벼락'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4-07-14 07:25   수정 2024-07-14 13:33



직원의 급박한 사정 등으로 인해 회사가 직원에게 금전을 빌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사업주가 직원에 대해 채권이 있다는 이유로 직원 동의 없이 임금을 공제한다면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실제로 매달 돈을 갚겠다며 돈을 빌려간 근로자가 입사 한 달 만에 퇴사하자, 사장님이 임금에서 이를 공제했다가 범법자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은 지난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당한 A씨에 대한 공판에서 벌금 50만원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2022고정55).
○"돈 빌려주면 매달 나눠서 갚을게요" 약속하고 한 달 만에 퇴사

2020년부터 강릉시에 있는 작은 음식점을 운영해 오던 A 사장은 2021년 8월 외국인 직원 B를 월급 230만원에 조리 및 배달원으로 쓰기로 했다.

그런데 취업하면서 B는 "돈이 필요하다"며 A에 250만 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갚는 조건으로는 "매월 월급에서 30만 원씩 분할 변제하겠다"라고 말했다.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만큼 제안을 뿌리치기 어려웠던 A사장은 B에 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B는 오래 다니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단 한 달 만에 식당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식당을 계속 다니는 것을 전제로 돈을 빌려줬던 A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더 황당했던 것은 B의 태도였다. B는 "미지급 월급 158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되레 받을 돈이 있는 A사장이 B의 요청을 거절하자 B는 A사장을 '임금체불'로 고소했다.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14일 이내에 임금 등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고소당한 A사장은 곧 식당을 폐업하게 됐다.

수사기관에서 A사장은 미지급 임금과 차용금을 정산하고 B가 모자란 금액을 반환하기로 하면서 금전관계는 청산됐다. 하지만 A에 대한 기소는 계속 진행됐다. B는 A가 자신과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도 고소했다.

A는 법정에서 "이미 250만원의 임금을 가불해 줬다"며 "임금을 미리 지급했기 때문에 퇴직 시 당연히 임금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준 돈이 임금이 아니라 대여금으로 본다고 해도, 임금과 정산하면 되레 돈을 돌려받아야 할 입장이므로 임금 미지급을 하겠다는 고의가 없었다"며 임금 체불의 의도가 없었으므로 무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의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부는 B가 매월 월급에서 분할변제하기로 한 사실을 들어 "250만 원은 임금을 미리 지급한 것이 아니라 대여금"이라고 확실히 했다.

이어 "대여금 채권이 있음을 이유로 미지급 임금에서 '상계(정산)'할 수 없으므로, 임금을 정산해서 지급하지 않은 게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벌금 50만원의 집행 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은 그 근거로 근로기준법 43조를 들었다. 해당 조항은 "임금은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직접지급'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해당 규정에 따르면 근로자에 대한 대출금이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채권으로 근로자의 임금 채권과 상계(정산)를 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직원과 금전거래 시 사실관계 명확히 해야
직원의 사정으로 회사와 직원 간 금전거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는 '가불'인지 '차용'인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가불은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한 부분에 대해 미리 임금을 당겨 받는 것을 말한다. 근로기준법 45조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출산, 질병, 재해,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상한 경우 비용에 충당하기 위해 임금 지급을 청구하면 지급기일 전이라도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즉 지급기일 전에 미리 돈을 받는 제도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이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한 대가를 당겨서 받는 것이므로, 가불금을 제외하고 임금을 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차용(대여금)은 가불과 달리 근로관계와 상관없이 돈을 빌리는 것이다. 대여금으로 보면 앞서 언급한 근로기준법 제43조의 제한을 받게 된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공제하는 것을 금지해 근로자의 경제생활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려는 취지다. 다만 사용자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동의'를 얻어 상계하는 경우엔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 판결도 있다. A사장의 경우 근로자의 근로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돈을 빌려준 점, 갚는 방식에 대해 합의한 점 등을 들어 '차용'으로 본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받을 돈이 있다는 이유로 임금·퇴직금에서 근로자의 동의 없이 임의로 공제했다가는 근로기준법 위반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중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이 배달 오토바이 사고를 내고 퇴사하는 직원에게 오토바이 원상 복구를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자 퇴직금에서 수리비 174만원을 공제했다가 50만원 벌금형을 선고 받은 사례도 있다(2024고정113). 근로자가 퇴직하면서 회사의 파일 등을 유출하고 삭제했다는 이유로 퇴직금에서 손해배상액을 일방적으로 삭감한 사장도 벌금 30만원을 선고 받은 사례가 있다(2023고정632).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직원들과 금전 거래 관계를 가지게 되면 대여금액과 변제 조건 등에 따라 가불인지 차용인지가 결정된다"라며 "일단 이미 이뤄진 근로에 대해 발생한 임금과 퇴직금은 법에 따라 정상 지급하고, 대여금은 별도 절차를 통해 변제 받는 게 안전하다"라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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