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 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경찰이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치열하게 입찰 경쟁을 벌이자 사업자 선정을 주관하는 방위사업청이 ‘경찰 입장을 고려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경찰 내부에선 수사가 무기한 늘어진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12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경찰은 현재 KDDX 사업 기밀 유출 건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KDDX 등에 관한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로 지난해 11월 유죄 판결이 확정받았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뿐 아니라 임원 등이 해당 사건에 개입했다”며 지난 3월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현재 국수본 내 중대범죄수사과에 해당 사건이 배당된 상태다. 중대범죄수사과에선 이들 두 기업이 연관된 사건을 현재 총 5건을 살펴보고 있다. 이 중 작년 6월부터 시작한 전 방위사업청장에 대한 수사 결과가 연말쯤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KDDX 사업 입찰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규정을 수정해 수주를 도운 의혹으로 전 방위사업청장이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와 별건으로 임원개입 사건 등을 포함해 나머지 4건은 현재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최근 방산 업계에선 ‘이달 말 관련 경찰이 관련 수사를 종합 발표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났다. 방위사업청도 사업자 선정 방식을 ‘KDDX 기밀 탈취 사건 관련 경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결정’이라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해당 사건의 사안이 복잡하고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라 수사가 무기한 늘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방산 업계의 소문과 달리 당장 발표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방사청장 관련 수사가 마무리된 이후에 다른 사건들을 수사할 수 있다”며 “곧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업계 소문들은 잘못된 사실이며 당분간 어떠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 없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두 업체의 다툼과 이를 방관하는 방위사업청 사이에서 사실상 심판자 역할로 나서게 되면서 내부에선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수사 결과에 따라 결국 한 쪽 기업 편을 들 수밖에 없게 되면서다. 경찰이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하면 현대중공업이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반대로 경찰이 사건을 ‘혐의 있음’으로 검찰에 송치하면 한화오션이 유리한 국면을 맞게 된다.
경찰은 반도체 기술 유출 등 산업기술 관련 수사만 주로 다뤘던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군사기술 유출 사건을 주로 국군방첩사령부가 경찰 대신 수사를 해왔었다. 경찰은 방산업의 경우 다소 생소한 영역이라 오히려 전문 기관인 방위사업청 등의 자문을 구해야 할 처지다.
경찰은 지난 10년(2014~2023년) 동안 산업기술 관련 수사를 878건을 한 반면 군사기술 관련 수사는 25건, 방산기술 관련 수사는 5건 등만 다뤄봤다. 경찰 관계자는 “방사청에서 어떻게 결정할지 경찰은 아는 바가 없다”며 “업계 동향과 관련 없이 절차에 따라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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