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숫자들의 향연
AI를 자본시장의 ‘황소’로만 보면 큰 오산이다. 심지어 AI가 만들어낸 주식시장의 거품이 조만간 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AI 기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가 간 경쟁에 미칠 지대한 영향 때문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AI를 ‘21세기 핵무기’에 비유한다. 인간보다 수만 배 지능이 뛰어난 AI가 전쟁 전술을 짜고, 국가 성장 전략을 제시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AI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차이는 존망을 가를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투자금이 얼마나 들어가든 최고 성능의 AI 개발에 ‘올인’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AI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 투자에 특화된 시노베이션 창업자 리카이푸는 AI를 전기에 비유한다. 전기 발견으로 인류는 산업화라는 전대미문의 퀀텀점프를 달성했다. 리카이푸가 보기에 AI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파괴적 영향력을 가진 존재다.
리카이푸는 AI 혁명의 과실을 따 먹을 수 있는 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에서 “딥러닝이 가진 변혁의 힘을 실세계 산업에 구현하는 기업가들이 주역이 될 것”이라고 썼다. 물론 그 주역은 중국의 기업가들이다.
인공지능은 21세기 핵무기
AI 전쟁에서 중국은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엄청난 실생활 데이터는 AI 학습을 위한 무궁무진한 식량이다. 서방의 민주주의 국가는 엄두도 못 낼 세밀한 개인과 산업의 데이터를 바이두 등 중국의 AI 기업은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전기를 생산할 석탄과 석유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것과 같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AI를 산업적인 관점을 넘어 국가안보, 더 나아가 핵무기급 ‘터닝 포인트’ 기술로 여긴다. 미국과 유럽이 AI 기술의 통제 불가능한 확장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중국은 그들만의 길을 갈 것이다.
창의와 혁신, 그리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가들의 집합인 실리콘밸리와 모방 및 경쟁, 그리고 중국몽 실현에 매진하는 충성가들의 집합인 중관춘(베이징)의 정면충돌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AI 종속을 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 어디에 종속될지 선택지만 남을 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 국회와 정부는 AI 전쟁의 방관자인 양 강 건너 불구경이다. 세계 강국들이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와중에 ‘배신의 정치’ 운운하는 여당 대표 후보들의 행태는 목불인견이다. 여의도만 ‘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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