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무·박봉 싫다" 가축 수의사 기피…졸업 후 90%가 반려동물 진료

입력 2024-07-12 17:57   수정 2024-07-22 16:25


“작년에는 80명 공모에 4명이, 올해는 43명 채용에 겨우 1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마저도 젊은 수의사가 아니라 내년에 퇴직하는 분입니다.”(전라북도 방역담당자)

전국 축산업계가 가축방역관 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방역관에 지원하는 수의사가 없어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소위 돈 되는 동물병원 개원의는 급증했지만 필수의료로 꼽히는 방역 담당 수의사는 급감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방역관 등의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방역 공백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축방역관 10명 중 4명 ‘공석’
1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가축방역관 적정 인원의 42.1%가 공석이다. 이마저도 15.8%는 수의대를 졸업한 뒤 대체복무하는 공중방역수의사로 채우고 있다. 농가 축산 방역에 종사하는 인력은 세 부류로 나뉜다. 수의직 공무원에 해당하는 가축방역관, 병역 대체복무직인 공중방역수의사, 동물병원 개원의를 위촉하는 공수의 등이다.


가축방역관이 줄어들자 대체복무자인 공중방역수의사로 충원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아졌다. 전라북도는 적정 인원 205명 중 95명을 확보했는데, 이 중 24명이 공중방역수의사다. 필요 수의사 276명 중 125명만 충원된 경기도 역시 공중방역수의사가 41명을 차지한다.

지역 축산 방역에 큰 역할을 하는 공중방역수의사도 감소하는 추세다. 병무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매년 필요한 공중방역수의사는 150명이지만, 충원 인원이 2023년 127명, 2024년 103명으로 줄었다. 한 수의사는 “훈련 기간을 포함해 복무 기간이 38개월에 달해 현역병으로 지원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낮은 처우에 반려동물 시장 쏠림
방역 담당 수의사가 줄어드는 것은 반려동물 시장이 커진 영향이 크다. KB금융지주의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552만 가구가 1262만 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시장 성장과 함께 반려동물 의사 수입도 크게 올랐다. 한 수의사는 “반려동물 임상 의사의 경우 초봉 기준 월 4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농장 수의사 처우는 제자리걸음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수의직렬 기준 초봉 월 250만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역에 따라 수의직 수당 월 25만~60만원을 지급하지만 반려동물 시장에 진출했을 때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소임상학회 회장을 지낸 류일선 아시아동물연구소장은 “급여 차이가 벌어지면서 사실상 임상수의사 10명 중 9명이 반려동물 진료를 하고 있다”며 “제왕절개를 할 수의사가 없어 어미 소와 새끼가 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급여 외 처우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으로 일하면 의사직은 4~5급에 임용되지만, 수의사직은 7급으로 시작하고 진급 가능성도 작다. 대한수의사협회 관계자는 “강원도에서는 수의직 공무원을 6급에 채용하겠다고 하지만 퇴임할 때도 6급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무도 고된 편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가축이 많은 지방에서는 현장 업무가 많아 격무에 시달리는 수의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수의사 수를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수의대 신설, 수의대 증원 등에 기존 수의사들이 ‘이미 과잉 상태’라며 반대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방역을 담당할 수의사를 키우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감염성 질병이 유행하며 수의사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인수공통전염병(코로나19·원숭이두창·조류인플루엔자), 가축전염병(구제역·아프리카돼지열병) 관리가 국가 보건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면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2016~2017년 구제역을 겪으며 방역 관련 필수 인력이 대폭 늘어났다”며 “수의사 유입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도 처우 개선에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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