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시간당 170원(1.7%) 오른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한 이후 처음으로 1만원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내년 인상률 1.7%는 2021년(1.5%) 후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하지만 숙박·음식업 등 일부 업종에서 최저임금을 지키지 못하는 비율(미만율)이 4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많게는 300만 명의 근로자 임금이 일제히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계 상황에 직면한 소상공인은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 압박이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열린 11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1만30원으로 정했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월급 환산액은 209만6270원(주 40시간, 월 209시간 근무 기준)이다.
이날 회의 종료 후 고용노동부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받는 근로자가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 기준으로 47만9000명(영향률 2.8%), 경제활동인구 부가 조사 기준으로 301만1000명(영향률 13.7%)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많게는 근로자 7명 중 1명이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급여가 자동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이들 근로자가 대부분 소속된 영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영향률이 비정상적으로 커진 것은 그동안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른 후유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작년까지 전체 산업의 명목임금이 17.2%, 물가가 12.6% 오르는 동안 최저임금은 27.8% 상승했다. 주휴수당 지급 대상인 주 15시간 이상 근로자 기준으로는 인상률이 53.3%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전 산업 노동생산성은 1.3%,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0.4% 하락했다.
이러다 보니 최저임금은 ‘지킬 수 없는 임금’이 됐다. 숙박·음식점업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지난해 37.3%, 주휴수당을 감안한 5인 미만 사업장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49.4%로 추산된다. 두 곳 중 절반은 최저임금을 주기 어려운 한계 상태라는 의미다. 숙박·음식점업의중위임금(시급 1만961원) 대비 최저임금 수준도 87.8%에 달해 적정 수준의 상한으로 여겨지는 60%를 웃돌았다.
이미 일본 제치고 아시아 최고…세후 최저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
한국의 최저임금은 세계적으로도 높다. 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쓰이는 ‘중위소득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지난해 65.8%로, 글로벌 적정 수준인 60%를 웃돌았다. 주요 7개국(G7)의 작년 평균은 52.0%다. 2022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G7 국가보다 적었지만 최저임금 연환산 금액은 네 번째로 많았다. 소득세와 사회보험부담액을 제외한 ‘세후’ 최저임금은 영국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새벽 내년도 최저임금을 흥정하듯 결정했다. 지난 9일 전원회의에서 최초 요구안으로 27.8% 인상안을 제시한 노동계와 동결을 요구한 경영계는 이날 5차 수정안까지 내놓았다. 최종적으로 근로자위원이 제시한 1만120원, 사용자위원이 제시한 1만30원을 놓고 표결에 부쳤다. 반발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표결 직전 회의장을 떠나면서 사용자위원 안은 14표, 근로자위원 안은 9표를 받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과거 고성장 호황기에는 이런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임금 상승률이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가 본격화한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끌어올리면서 사회 곳곳에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미 적지 않은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과 권순원 최저임금위 간사는 12일 새벽 최저임금 관련 브리핑에서 “의사결정 시스템 자체가 한계에 이르렀다”며 “최저임금 결정 체계가 이대로여선 안 된다”고 했다. 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현행 제도하에선 지금도 지키기 어려운 최저임금을 매년 조금씩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무송 대한산업안전협회장은 “정부가 객관적인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마련하고 독립위원회나 전문가그룹이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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