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원가 제때 반영 않는 전기·가스요금, 괜찮은가

입력 2024-07-15 10:00   수정 2024-07-15 15:45


일반 가정용 도시가스 도매 요금은 액화천연가스(LNG) 등 원자재 가격을 반영하는 연료비연동제가 적용돼 홀수 달마다 결정된다. 산업용·발전용은 매달 자동 조정된다. 전기요금은 3개월 치 국제 유가와 LNG 가격 동향을 반영해 분기(3개월)마다 산정된다. 인상폭도 일정 수준으로 제한돼 있다. 가스와 전기는 대표적 ‘공공요금’으로 사실상 정부가 책정한다. 문제는 연료비 변동을 반영하는 원가연동제를 하면서도 제때 인상분을 반영하지 않아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가 천문학적 빚더미에 올라 있다는 점이다. 공공요금을 올리면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도 올라 고물가를 더 자극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하지만 공기업이 누적 적자로 제 기능을 못하면 결국 국민 부담이다. 정부의 무리한 공공요금 인상 억제, 괜찮은가.
[찬성] 인플레 고통, 공기업이 흡수해줘야…고물가 잡겠다고 장담한 정부의 책무
경제 전반에 걸친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치면서 고물가는 국제적 현상이 됐다.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인플레이션 경제를 앞으로도 한동안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자국 우선주의 등 보호주의 기류는 자유롭고 공정한 교역을 힘들게 해 우리만 노력한다고 고물가를 수월하게 극복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나서 물가 상승 요인을 적극 흡수 해결해야 한다.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이 더 높아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고 기다렸다는 듯 즉각 소비자 가격에 반영해버린다면 왜 공기업인가. 정책은 무엇이며, 정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국제 가스값이 오르거나 원유 가격이 뛸 때 거대 공기업이 인상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하면서 가격인상을 일정 기간 막아주는 방파제 구실도 못 한다면 공기업이라는 특수한 자격을 부여하며 정부가 관리·감독할 이유도 없다. 그렇게 해서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거나 안정화됐을 때 손실분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에너지 공기업들이 원 팀이 되어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장기적으로 수입 물량을 잘 확보해 가격인상 요인을 평소에 막아야 한다.

더구나 정부는 물가를 잡겠다고 수시로 장담해왔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민간의 상품 가격에 직접 개입이 어려운 만큼 전기·가스·수도·교통·학비 등 기본적인 공공요금만큼은 어떻게든 책임지고 안정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무리는 어쩔 수 없다. 만약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실이 커진다면 직접 재정(정부 예산)에서 지원 못 할 이유는 없다. 경제가 어려울 때, 불황이 깊어질 시기 정부가 물가를 잡고 기초 생필품과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어떤 정부라도 기본 책무다. 해당 공기업들도 원가 인상만 하소연할 게 아니라 경영 혁신과 자구 노력으로 스스로 가격 상승 요인을 흡수해야 한다.
[반대] '정치 요금' 한전 하루 이자 120억원 부담…공기업 부실 키우면 국가 신인도 하락
한국에서 전기료와 가스값은 ‘정치 요금’이 돼버렸다. 정파를 떠나 모든 정부가 소비자 눈치를 살피느라 명문화돼 있는 원가 연동제를 하지 않는다. ‘국민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해야 할 일도 않는 것은 명백한 포퓰리즘이다. 2024년 7월의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 6.8% 인상을 예로 보자.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LNG 가격이 급등했지만 아랑곳 않고 있다가 15개월만에야 찔끔 올렸다. 그나마도 난방용 에너지 수요가 가장 적은 여름철에 올려 에너지 가격에 대한 경각심도 주지 않았다.

장기간의 가격 동결도, 그 이후의 소폭 인상도 가스공사 사정을 보면 명백히 잘못됐다. 도시가스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몰아넣어 미수금(사실상 손실금)이 15조원을 넘어섰다. 총부채는 47조원에 달해 민간기업이었다면 벌써 부도가 났을 지경이다. 가스공사 사장이 나서서 “빚 때문에 하루에 이자비용만 47억원”이라고 절규하자 그나마 찔끔 올린 것이다. 언젠가 누구가가 다 갚아야 할 빚이다. 가구당 한 달에 몇천 원 정도 절감해주는 대가로 국가의 중요한 공기업을 거덜내고 있다. 소탐대실이다. 전기요금을 억지로 묶은 결과 한전은 더한 부실덩이가 됐다. 2021~2023년 국제 연료비 급등 시기에 쌓인 적자가 40조원을 넘어서면서 한전의 총부채는 200조원에 달한다. 2023년 이자비용으로 4조5000억원이 나갔으니 하루 120억원 꼴이다.

이렇게 되면 거대 공기업이 제구실을 할 수 없다. 더구나 한전은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다. 시설 개발과 안전을 위한 투자는 물론 우수인력 확보를 통한 기술개발도 어려워진다. 산업과 경제발전의 기본인 전력과 가스 인프라가 흔들리는 판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떻게 가능할지 우려된다. 또 외자 유치에는 지장이 없을까. 소탐대실하다 국가의 에너지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 고물가 대책이 에너지 포퓰리즘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 생각하기 - 갈수록 요금 인상 어려워…에너지 생태계 무너지면 산업 타격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공개적으로 “현재 미수금(손실) 규모는 전 직원이 30년간 무보수로 일해도 회수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읍소했다. 한전과 가스공사 부채는 250조원, 하루 이자 비용만 170억원에 달한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산업 등에 필요한 전력망 확충을 위한 투자에 악영향을 줘 산업 경쟁력 저하는 물론 에너지 안보까지 위협하게 된다. 고물가에 공공요금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은 이해된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낮은 에너지 요금은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다. AI발 전력 수요가 겹치면서 천연가스 가격 폭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매번 여론을 눈치 보며 ‘찔끔 인상’하는 식으로는 여기에 대비할 수 없다. 정치가 좌우하는 비정상적 요금 결정 구조를 바꿔 원가와 수요에 연동하는 제도를 확실히 해야 한다. 에너지 생태계가 무너지기 전에 시장 기반 요금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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