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가정용 도시가스 도매 요금은 액화천연가스(LNG) 등 원자재 가격을 반영하는 연료비연동제가 적용돼 홀수 달마다 결정된다. 산업용·발전용은 매달 자동 조정된다. 전기요금은 3개월 치 국제 유가와 LNG 가격 동향을 반영해 분기(3개월)마다 산정된다. 인상폭도 일정 수준으로 제한돼 있다. 가스와 전기는 대표적 ‘공공요금’으로 사실상 정부가 책정한다. 문제는 연료비 변동을 반영하는 원가연동제를 하면서도 제때 인상분을 반영하지 않아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가 천문학적 빚더미에 올라 있다는 점이다. 공공요금을 올리면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도 올라 고물가를 더 자극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하지만 공기업이 누적 적자로 제 기능을 못하면 결국 국민 부담이다. 정부의 무리한 공공요금 인상 억제, 괜찮은가.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고 기다렸다는 듯 즉각 소비자 가격에 반영해버린다면 왜 공기업인가. 정책은 무엇이며, 정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국제 가스값이 오르거나 원유 가격이 뛸 때 거대 공기업이 인상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하면서 가격인상을 일정 기간 막아주는 방파제 구실도 못 한다면 공기업이라는 특수한 자격을 부여하며 정부가 관리·감독할 이유도 없다. 그렇게 해서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거나 안정화됐을 때 손실분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에너지 공기업들이 원 팀이 되어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장기적으로 수입 물량을 잘 확보해 가격인상 요인을 평소에 막아야 한다.
더구나 정부는 물가를 잡겠다고 수시로 장담해왔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민간의 상품 가격에 직접 개입이 어려운 만큼 전기·가스·수도·교통·학비 등 기본적인 공공요금만큼은 어떻게든 책임지고 안정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무리는 어쩔 수 없다. 만약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실이 커진다면 직접 재정(정부 예산)에서 지원 못 할 이유는 없다. 경제가 어려울 때, 불황이 깊어질 시기 정부가 물가를 잡고 기초 생필품과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어떤 정부라도 기본 책무다. 해당 공기업들도 원가 인상만 하소연할 게 아니라 경영 혁신과 자구 노력으로 스스로 가격 상승 요인을 흡수해야 한다.
장기간의 가격 동결도, 그 이후의 소폭 인상도 가스공사 사정을 보면 명백히 잘못됐다. 도시가스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몰아넣어 미수금(사실상 손실금)이 15조원을 넘어섰다. 총부채는 47조원에 달해 민간기업이었다면 벌써 부도가 났을 지경이다. 가스공사 사장이 나서서 “빚 때문에 하루에 이자비용만 47억원”이라고 절규하자 그나마 찔끔 올린 것이다. 언젠가 누구가가 다 갚아야 할 빚이다. 가구당 한 달에 몇천 원 정도 절감해주는 대가로 국가의 중요한 공기업을 거덜내고 있다. 소탐대실이다. 전기요금을 억지로 묶은 결과 한전은 더한 부실덩이가 됐다. 2021~2023년 국제 연료비 급등 시기에 쌓인 적자가 40조원을 넘어서면서 한전의 총부채는 200조원에 달한다. 2023년 이자비용으로 4조5000억원이 나갔으니 하루 120억원 꼴이다.
이렇게 되면 거대 공기업이 제구실을 할 수 없다. 더구나 한전은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다. 시설 개발과 안전을 위한 투자는 물론 우수인력 확보를 통한 기술개발도 어려워진다. 산업과 경제발전의 기본인 전력과 가스 인프라가 흔들리는 판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떻게 가능할지 우려된다. 또 외자 유치에는 지장이 없을까. 소탐대실하다 국가의 에너지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 고물가 대책이 에너지 포퓰리즘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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