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와 실물경제 사이 괴리가 커지고 있다. 닛케이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반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부진의 늪에 빠지는 모습이다. 기업 실적 상승의 과실이 개인에게 충분히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닛케이지수는 지난 11일 미국 증시 훈풍에 힘입어 사흘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전장보다 0.94% 오른 42,224에 마감했다. 닛케이지수는 지난 4일 40,913을 기록하며 3개월 만에 가장 높이 올라간 데 이어 9일부터 사흘 연속 최고 행진을 이어갔다.
3월까지는 반도체주(株)가 닛케이지수를 주도했다. 최근엔 엔저에 힘입어 수익성을 높인 제조업과 금리 상승이 호재로 작용하는 금융업 등이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에너지와 방위산업 성장 기대로 주가가 올해 들어 120%가량 상승했다. M&A로 송배전 사업 등 수익력을 높인 히타치제작소도 같은 기간 80% 넘게 올랐다.
최근 닛케이지수 상승 배경에는 4~6월 결산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엔저 등에 따라 4~6월 일본 기업 실적이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는 시나리오에 따른 ‘트럼프 트레이드’가 닛케이지수를 다시 깨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가 상승에 따라 시가총액이 10조엔을 넘어선 기업이 크게 늘었다. 작년 말 10개에서 현재 19개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히타치제작소 등이 올해 처음으로 ‘10조엔 클럽’에 새로 가입했다. 글로벌 대기업으로 구성된 도쿄증시 프라임 시장의 시총은 처음으로 1000조엔을 돌파했다.
시총 선두는 역시 도요타자동차다. 50조엔 초반대로, 품질 인증 부정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일본 주식 중에서는 단연 독보적이다. 도요타에 이어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소니그룹, 키엔스, 히타치제작소, 도쿄일렉트론, 소프트뱅크그룹, 리크루트홀딩스, NTT, 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까지 상위 10위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일본 경제는 허덕이고 있다. 일본 경제성장률은 올해 들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최근 일본 정부가 지난 1분기 실질 GDP 증가율에 오류가 있었다며 수정 발표했는데, 연율 기준 -1.8%에서 -2.9%로 더 떨어졌다. ‘GDP 쇼크’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일본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한 근본적 이유는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 소비가 위축된 탓이다. 개인 소비는 전 분기보다 0.7% 감소해 네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개인 소비 위축은 엔저에 따른 물가 상승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3.1% 오르며 198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2%대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임금이 그만큼 오르지 않아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이 마이너스 행진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실질임금은 지난 5월까지 26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실물경제와 주가 사이 괴리가 커지고 있다”며 “GDP가 국내 생산활동을 반영하는 반면, 일본 기업 실적과 주가는 해외 성장 실적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이코노미스트 사이에서는 2분기 일본 경제도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초 2분기는 ‘V자형’ 회복 궤도를 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다시 부정적 기류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이는 역사적 엔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전략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앞서 시장에선 일본은행이 7월에 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달 일본은행이 올해 실질 GDP 증가율 전망치를 종전 0.8%에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저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한다고 해서 반드시 숨통이 트이는 시나리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며 “역사적 엔저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일본 정부가 안정적 경제성장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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