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생애 첫 우승만큼 어려운 게 통산 두 번째 우승이라는 말이 있다. 우승 한 번에 취해 현실에 안주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스포트라이트에 따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해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 이번 대회 전까지 자신의 우승 횟수에 ‘1’이라는 숫자만 남긴 선수는 81명. KLPGA투어 역사상 우승 트로피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선수가 197명이니 약 40%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 1승자 중 절반 이상이 끝내 두 번째 우승을 하지 못한 채 투어 생활을 마무리했다.
1년 전 첫 승을 올린 고지우(22)도 그중 한 명이었다. 우승 직후 4개 대회 연속 커트 탈락을 할 정도로 흔들렸다. “작년 운 좋게 첫 승을 하고 나서 진짜 안 풀렸다”는 고지우는 올해도 16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 세 차례 이름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것도 우승 경쟁과는 거리가 먼 톱10이었다.
고지우는 이날 열린 최종 4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 합계 19언더파 269타를 적어낸 그는 마지막까지 추격의 끈을 놓지 않던 단독 2위 전예성(23)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우승 상금은 1억8000만원이다. 고지우는 우승을 확정한 뒤 “지난 1년 동안 정말 안 풀려서 두 번째 우승을 하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힘든 시간이었고 너무나 간절했다”고 눈물을 쏟았다.
2022년 KLPGA투어에 데뷔한 고지우는 매 대회 공격적 플레이를 펼쳐 ‘버디 폭격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올해도 이 대회 전까지 버디 176개를 잡아내 이 부문 2위를 달리고 있다. 중요한 순간마다 실수가 나와 번번이 우승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만큼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경기해 마지막 날까지 리더보드 최상단 자리를 지켜냈다. 전날 3라운드까지 버디 17개를 몰아치고 보기는 1개로 막은 고지우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솎아낸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번 대회에서도 윤이나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동 31위로 출발했지만 2라운드에서 이글 1개를 포함해 3타를 줄여 공동 22위로 올라섰고, 전날 3라운드에서는 무려 5타를 줄여 공동 10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윤이나의 기세는 최종 라운드까지 계속됐다. 전반에는 버디 1개와 보기 1개로 타수를 줄이지 못했으나 후반 10번홀(파4)부터 3개 홀 연속 버디를 몰아치는 등 버디만 5개를 쓸어 담아 이틀 연속 5타를 줄였다. 최종 합계 15언더파 273타를 적어낸 윤이나는 고지우에게 4타 뒤진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쳐 시즌 일곱 번째 톱10에 입상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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