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낙태가 논란이다. 한 20대 임신부가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임신 36주차에 중절 수술을 받는 과정을 유튜브에 브이로그(일상을 촬영한 동영상) 형식으로 올리면서다. 누리꾼 사이에 “다 자란 아이를 꺼내 죽인 것” “명백한 낙태죄” 등 비난이 들끓었다. 급기야 보건복지부가 해당 임신부와 수술 의사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건 죄목은 ‘살인죄’. ‘낙태 무법 상태’인 현실을 감안한 궁여지책이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66년 동안 ‘낙태죄’라고 불리던 형법 제269조 제1항 자기 낙태죄와 제270조 제1항 의사 낙태죄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혼란을 막기 위해 국회에 2020년 말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기결정권 간 조화와 균형을 찾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국회가 수수방관하면서 낙태가 불법도 합법도 아닌 모호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 임신 주수 기준을 아예 폐지하는 법안부터 2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안까지 6건의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정쟁에 빠진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폐기처분됐다.
법상 최고의 보호 법익은 인간 생명이다. 그런데 생명을 다루는 법을 공백 상태로 두는 비상식적인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낙태죄가 없는 선진국도 없지만, 낙태가 무법 상태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아무리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회라지만 이런 직무유기가 없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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