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게임의 룰' 바뀌는 HBM4…삼성, 4나노 반격

입력 2024-07-15 17:59   수정 2024-07-23 16:23


‘삼성전자 vs SK하이닉스+TSMC’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가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시장의 경쟁 구도다. HBM4부터는 D램을 쌓아 만드는 HBM의 가장 밑단 ‘로직 다이’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정에서 제조한다. HBM은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지만, 파운드리를 할 줄 모르는 SK하이닉스는 HBM4 시장을 잡기 위해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와 손을 잡았다.

강자끼리의 연합에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와 HBM 제작·칩 설계를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서의 강점을 활용하기로 했다. HBM을 담당하는 메모리사업부와 최첨단 공정에 능한 파운드리사업부가 협력해 시너지를 내기로 한 것. 그렇게 탄생한 첫 프로젝트가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을 활용한 로직 다이 제작이다.
HBM 역전 위한 승부수
당초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HBM4 로직 다이 제작에 7㎚ 또는 8㎚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HBM 제작에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하는 건 HBM4가 처음인 만큼 무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2019년께 양산을 시작한 7㎚는 5년 이상 활용 경험이 쌓인 덕분에 안정적인 공정으로 꼽힌다.

삼성은 ‘안정’ 대신 ‘도전’을 선택했다. SK하이닉스가 꽉 잡고 있는 HBM 시장의 판을 흔들려면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4㎚는 작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공정으로, 난도가 높고 투입되는 자원도 구형 공정의 두 배가 넘는다. 하지만 고성능·저전력 칩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확실하다.

삼성의 4㎚ 결단은 HBM의 두뇌 역할을 하는 로직 다이의 성능을 끌어올려 경쟁사를 압도하는 HBM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최근 HBM이 들어가는 인공지능(AI) 가속기(AI 학습·추론에 특화된 반도체 패키지)는 ‘전기 먹는 하마’ 취급을 받고 있다. 엔비디아, AMD 등 AI 가속기 제조사들은 삼성전자에 “저전력 HBM을 개발해달라”고 요구했다.

4㎚ 공정은 HBM 고객사의 까다로운 요구를 맞출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 공정을 활용해 세계 최초의 AI폰으로 불리는 ‘갤럭시 S24’용 저전력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2400’을 양산한 경험이 있다. 삼성 입장에서 4㎚ 공정은 ‘에이스 투수’처럼 상대방을 압도하는 성능을 낼 수 있는 ‘필승 카드’인 셈이다.
SK, TSMC도 ‘5㎚’ 활용 계획
SK하이닉스, TSMC와 달리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로 불리는 설계에 특화된 조직 ‘시스템LSI사업부’를 삼성이 보유한 것도 4㎚를 선택한 배경으로 꼽힌다. 4㎚ 공정에서 최고의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선 로직 다이를 설계할 때부터 최적화해야 하는데, 삼성은 한 지붕 아래에서 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TSMC, SK하이닉스와 달리 설계 인력이 HBM4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삼성만의 차별화된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조직된 HBM개발팀에 시스템LSI사업부 소속 인력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TSMC 연합군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에 대응하기 위해 HBM4 로직다이 제작에 당초 계획했던 12㎚ 공정과 함께 5㎚ 공정도 병행하기로 했다. HBM4 성능을 높이기 위한 인력 확충에도 나섰다. SK하이닉스는 15일까지 로직 설계 관련 경력직을 채용했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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