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금리의 역습…소상공인 더 때렸다

입력 2024-07-15 17:43   수정 2024-07-17 09:17


‘관치(官治) 금리’의 역습이 시작됐다. 지난 2년간 가계대출 확대를 방조해온 정부 정책이 결과적으로 자영업자의 살림살이를 더 팍팍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작년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린 탓에 발생한 가계 빚 급증 현상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 피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한은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내준 ‘중소기업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 5월 신규 취급액 기준 연 4.85%였다. 같은 기간 은행권 전체 주담대 평균 금리(연 3.91%)보다 0.94%포인트 높다.

2022년 5월까지만 해도 중소기업대출은 주담대보다 평균 금리가 낮았다. 하지만 정부가 가계 이자 부담 완화를 이유로 은행권에 주담대 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2022년 4분기부터 중소기업대출 평균 금리가 주담대보다 약 1%포인트 높은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주담대 금리가 낮아지자 가계대출 잔액은 빠른 속도로 늘었다. 국내 은행권 주담대 잔액은 올 상반기에만 26조5000억원 증가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투자가 한창이던 2021년 상반기(30조4000억원) 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문제는 가계 빚 우려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면서 “언제 (기준금리의) 방향을 전환할지와 관련해 외환시장, 수도권 부동산, 가계부채 움직임 등 위험 요인이 많아 불확실하다”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피해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집중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2021년 말 0.5%에서 올해 1분기 말 1.5%로 뛰었다. 가계부채 급증으로 인한 경제 부담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이날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가계대출 현장 점검에 나섰다. 이르면 다음주 가계대출 대책도 발표하기로 했다.
'금리 포퓰리즘'의 덫…주담대 누른 2년, 자영업자 연체율 치솟아
정부, 인위적 주담대 금리인하 압박…자영업자 폐업 100만명 넘을 듯
지난해 제주도에 카페를 새로 연 자영업자 최모씨(31)는 최근 카페 영업을 접고 전업주부로 돌아섰다. 연 6%에 달하는 높은 대출 이자 부담이 1년 넘게 이어진 가운데 관광객 감소로 매출마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적자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최씨는 “작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올초 기준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해 버텼다”며 “지나고 보니 현실은 완전 딴판”이라고 탄식했다.
자영업 폐업, 코로나19 때보다 많아
실물 경제를 떠받치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곡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수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 고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다 보니 대출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사업자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급증과 주택 가격 자극 가능성을 이유로 기준금리 인하를 늦추면서 취약계층의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지난 1분기 말 1.52%로, 2022년 2분기 말(0.5%)과 비교해 세 배 수준으로 뛰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이 0.56%에서 0.98%로 0.42%포인트 오른 데 비해 자영업자 연체율 상승 폭이 더 크다.

빚조차 갚지 못하자 버티다 못해 폐업하는 자영업자는 코로나19가 닥쳤을 때보다 많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폐업 자영업자는 지난해 총 91만1000명으로 전년(79만8000명) 대비 11만3000명 늘었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2020년(82만7000명)보다 많다. 올해엔 폐업 자영업자가 100만 명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 개입에 디레버리징 못 해”
자영업자의 경영 환경이 이토록 악화한 데는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게 책정하도록 압박하며 가계대출 확대를 사실상 눈감아준 금융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낮은 주담대 금리로 인해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수도권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데, 한은이 이를 이유로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주담대 금리 인하 정책은 작년 초부터 본격화됐다. 작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 돈 잔치’로 국민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국 은행을 일일이 돌며 가계대출 금리 인하 약속을 받아냈다.

정부의 주담대 금리 인하 압박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작년 하반기엔 윤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이 나오면서 은행권에 ‘상생금융’ 압박이 이어졌다. 은행들은 소상공인에 대한 이자 캐시백(환급)과 주담대 금리 인하로 화답했다. 올해엔 금융위원회가 나서 비대면 주담대 대환대출 인프라를 구축하고 각 은행에 참여를 압박했다. 차주가 언제든 값싼 금리를 제시하는 다른 은행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되면서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금리는 더 낮아졌다.

낮은 금리로 가계대출이 폭증하자 금융당국은 이달 들어서야 부랴부랴 은행권에 주담대 금리 인상을 압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의 이달 주담대 금리 인상 폭은 0.1~0.2%포인트로 미미한 수준이다. 심지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이달 도입하기로 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시행 시기를 돌연 9월로 미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정부의 압박 탓에 긴축적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선 인위적 시장 개입을 중단하고 중소기업 대출 금리 경쟁을 촉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진/강현우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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