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이 여름철에 맞춘 ‘이색 제품’으로 다시 한번 라면 시장에 승부수를 띄웠다. 이번엔 ‘삼계탕면’이다. 이름처럼 삼계탕을 라면 형태로 구현해내기 위해 노력한 제품이다. 하림에 따르면 삼계탕면은 국내산 닭을 오랜 시간 고아내 진짜 삼계탕을 먹는 것처럼 진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
라면의 핵심인 면과 건더기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면의 경우 닭 육수로 반죽한 건면으로 제작했으며 국내산 수삼으로 만든 오일도 후첨 수프로 넣었다. 삼복더위를 앞두고 간편하게 복달임 음식을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이런 라면을 선보였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철 수요가 급증하는 비빔면도 얼마 전 새로운 맛으로 내놨다. 지난해 3월 출시한 ‘더미식 비빔면’에 매운맛을 강화한 ‘더미식 비빔면 맵싸한 맛’이 주인공이다.
이 라면도 일반 비빔면과는 다르다. 소스는 세계 4대 고추라고 불리는 ‘부트졸로키아’, ‘하바네로’, ‘청양고추’, ‘베트남고추’를 함유해 기존 비빔면과 다른 맛을 강조했다. 특히 링고추, 청양고추 등을 토핑으로 넣어 비빔면의 매운맛을 한층 더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최근 화끈한 매운맛을 즐기는 트렌드가 거세게 이는 추세를 반영해 이런 제품을 내놓게 됐다.
라면 시장 공략을 위한 하림의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랜 기간 농심·오뚜기·삼양식품·팔도로 이어지는 ‘4강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계속해서 차별화된 맛의 라면을 출시하며 라인업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비록 그간 선보인 라면 제품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냈지만 ‘결코 포기는 없다’는 게 하림의 각오다.
하림 관계자는 “‘칠전팔기’의 자세로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소비자들이 하림 라면의 진가를 알아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런 하림을 바라보는 우려도 존재한다. 라면 사업의 부진으로 하림산업의 적자 또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하림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언젠가는 진가 알아줄 것” “이 가격으로 누가 라면을 먹어.”
하림이 2021년 첫 라면 제품인 ‘더미식 장인라면’을 내놓자 시장에서 나왔던 반응이다. 당시 하림은 닭고기 전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그룹의 새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라면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첫 제품인 ‘더미식 장인라면’을 통해서다.
출시와 동시에 화제를 모은 건 가격이다. 하림이 책정한 장인라면 한 봉지는 ‘2200원’이다. 하림 측은 “시중의 라면들과 비교할 수 없는 훨씬 좋은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가격이 책정될 수밖에 없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라면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에도 하림은 자신이 있었다. 하림이 만든 라면은 시중에서 볼 수 있었던 라면과 분명히 달랐기 때문이다. 라면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장인라면은 사골과 소고기, 닭고기 등 신선한 육류 재료와 각종 양념 채소를 20시간 이상 끓인 국물을 그대로 농축한 액상 수프를 넣었다.
나트륨 함량도 기존 라면(1650~1880mg)보다 훨씬 적은 1430mg으로 낮추는 등 제품력을 차별화해 인스턴트라면 수준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반드시 소비자들이 자사 제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 후 4년, 안타깝게도 하림의 라면 시장 진출은 ‘성공적’이라고 보긴 좀 어렵다.
장인라면 출시 이후에도 하림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짜장면, 비빔면, 메밀면을 비롯해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빨강라면’과 ‘하양라면’ 등 프리미엄급 신제품들을 끊임없이 출시했지만 번번이 흥행에 실패했다. 일부 제품은 맛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충성고객들을 대거 보유한 라면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기란 쉽지 않았다.
비싼 가격도 매번 걸림돌이 됐다. 일반 라면보다 두 배가량 비싼 장인라면을 선뜻 구매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포털사이트나 SNS 등에도 “생각보다 맛은 좋은데 이 가격을 주고 먹고 싶지는 않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한 라면 업계 관계자는 “라면은 서민 음식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만큼 비싼 가격 자체를 소비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라면업계 일각에서는 더 이상 하림이 라면 신제품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하림은 이런 예상을 깨고 올해도 여러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여름철을 겨냥해 신제품 2종을 출시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소비자 니즈를 반영한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라면 시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림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라면 시장은 여전히 ‘블루오션’ 하림이 라면 시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갈수록 커지는 시장 규모 때문이다. 한국 라면 기업들의 성장세에서도 나타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K-라면이 갈수록 큰 인기를 끌며 주요라면 기업들의 매출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농심만 보더라도 어느덧 매출 4조원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신라면’의 국내외 매출만 매년 1조원이 넘는다.
삼양식품도 빼놓을 수 없다. 2019년에만 해도 삼양식품의 연 매출은 5000억원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 인기가 갑자기 치솟으면서 매년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엔 사상 처음 매출 1조원을 돌파했으며 올해 매출은 2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하림도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탄탄한 국내 수요, 그리고 급증하는 해외 수요를 감안했을 때 라면 시장이 여전히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이런 하림의 라면 사업을 바라보는 전망은 엇갈린다. 한때 라면 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삼양식품이 해외에서 불닭볶음면 열풍이 일며 ‘대박’이 난 것처럼 하림도 꾸준히 제품을 출시하다 보면 제2의 ‘불닭 신화’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하림도 불닭의 사례를 참고해 라면 제품들의 수출을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계속해서 저조한 성과를 올리며 적자 폭이 커질 경우 ‘빙그레’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예상도 존재한다.
빙그레도 라면 시장의 성장성을 보고 과거 1986년 시장에 진출했으나 계속 늘어나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2003년 사업을 접었다.
현재 하림산업의 실적도 좋지 않다. 신제품 출시와 마케팅에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저조한 판매 때문에 갈수록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하림산업의 영업손실은 2021년 589억원에서 지난해 1000억원을 돌파했다.
하림은 제2의 삼양식품이 될까, 아니면 제2의 빙그레의 길을 걸을까.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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