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인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사진)이 뉴욕 연방검찰로부터 16일(현지시간) 기소됐다. 미국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면서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다.
뉴욕 검찰은 이날 공개한 공소장에서 수미 테리가 CIA에서 퇴직하고 5년 뒤인 2013년부터 최근까지 한국 국가정보원 소속 요원과 접촉하면서 전·현직 미국 정부 관리와의 만남을 주선하거나 한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기고하는 등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 대가로 국정원 파견 관료에게서 수백만원 상당의 명품 코트와 가방 등을 선물받았다는 것이다. 뉴욕 검찰은 수미 테리가 몸담고 있는 싱크탱크에 국정원이 5000만원 상당의 기금을 전달한 점도 공소장에 적시했다.
검찰 공소장에는 수미 테리가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문자와 한국 측에서 받은 금품 내역을 비롯해 그가 어떤 접대를 받았는지 등이 사진까지 첨부돼 적나라하게 담겼다. 10여 년에 걸쳐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고가 의류와 핸드백, 고액의 연구비 등을 받았다고 검찰은 공소장에 적시했다.
뉴욕 검찰은 특히 수미 테리가 2022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함께 참석한 비공개 간담회 내용을 국정원 간부에게 흘렸다는 의혹도 엄중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회의가 끝나자마자 수미 테리는 국정원 소속 파견 참사관의 차량에 탑승했고, 이 자리에서 참사관은 수미 테리가 메모한 간담회 내용 2쪽 분량을 사진으로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미 테리 측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의 변호인은 “한국 정부를 대변해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는 기간에 수미 테리 연구원은 한국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연계된 만큼 이번 기소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정보 소식통의 입지가 좁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대선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자국 내 정보 단속 활동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수미 테리는 서울 출생으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2001~2008년 CIA에서 동아시아 분석가로 일했고, 2008~2009년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한국·일본 및 오세아니아 과장을 지냈다. 이후 동아시아 국가정보 담당 부차관보까지 역임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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