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17일 친정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방송4법 입법 강행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정부·여당에도 “공영방송 이사 선임 일정을 중단하고 방송통신위원회 파행 운영을 즉각 멈춰달라”고 했다. 민주당이 오는 25일 방송4법 본회의 처리를 벼르고,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서며 정면 충돌할 조짐을 보이자 우 의장이 공개적으로 중재에 나선 것이다.
우 의장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방송법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치가 내부 갈등을 넘어 극심한 국론 분열로 이어지고 있어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다”며 방송법 개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여야에 요구했다. 그러면서 24일까지 입장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방송4법은 9~11명인 공영방송 이사를 21명으로 늘리는 게 핵심이다.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에도 추천권을 준다. 민주당은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국민의힘은 친야권 성향 인사를 공영방송 이사진에 포진시켜 방송을 영구 장악하기 위한 노림수라며 반대하고 있다.
방송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다.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법안심사소위원회도 건너뛴 채 속전속결로 상임위원회를 통과시켜 본회의 최종 의결만 남은 상황이다. 야권이 강행 처리해도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우 의장은 “여당은 대통령과 정부의 권한으로 밀어붙이고, 야당은 숫자로 밀어붙이는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며 “여야 모두 한 발씩 물러나 냉각기를 갖고 합리적인 공영방송 제도를 설계해보자”고 했다. 우 의장은 별도의 협의기구에서 방송법 대안을 만들어보자며 협의 기간으로 두 달을 제시했다.
우 의장은 민주당이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 임명 강행 시 탄핵 추진을 거론하는 데 대해서도 “탄핵 소추 논의를 중단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정부 들어 임명된 이동관·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이 자신들에 대한 탄핵 소추가 추진되자 자진 사퇴하고, 이 후보자에 대해서도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보이자 자제를 촉구한 것이다.
이날 우 의장의 제안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배신자” “수박(비이재명계를 지칭하는 속어) 의장” 같은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민주당이 우 의장의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우 의장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이라며 “방송 장악 시도를 먼저 멈춰야 한다”고 했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원점 재검토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재영/정상원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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