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몬테 네비올로는 10년 지나야 제맛”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입력 2024-07-24 13:53   수정 2024-07-24 13:55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24>

지난해 말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와인모임이 있었다. 멤버는 현직 경영인들로 그중 한 명이 “이탈리아 출장길에 산 최고급 와인을 두어 병 가져왔다”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참석자들 역시 높은 가격대를 알기에 기대감에 부풀었다.

서둘러 스파클링과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드디어 오늘의 메인 와인과 마주했다. 디캔터를 기울이는 순간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 코를 깊숙이 들이박거나 혹은 조심스럽게 잔을 흔들며 고가 와인의 특별한 향과 맛을 잡기에 안간힘이다.

그러던 모습이 첫 잔을 마시자마자 아우성으로 돌변했다. 다들 미간을 찌푸리며 ‘너무 떫고 시다’고 하소연한 것. “이탈리아 현지 가격으로 병당 200달러가 넘었다는데 이런 맛과 향이라니….” 부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러나 와인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오늘의 주인공인 ‘바롤로 리제르바 2017년 빈티지’는 62개월의 긴 숙성기간을 마치고 이제 막 출시된 어린 와인이기 때문이다. 장기 숙성용 포도 네비올로(Nebbiolo) 100%를 사용했다.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네비올로는 일찍 꽃이 피고 늦가을 수확하는 만생종. 껍질은 짙은 보라색으로 두껍지만 와인 색상은 옅은 벽돌색을 띠고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 누아처럼 단일품종으로 양조된다.

‘안개를 먹고 자란다’는 이 품종은 물이 잘 빠지는 석회질의 이회토를 좋아한다. 전 세계 생산량 대부분이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에서 재배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산지가 그 유명한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숙성이 덜된 네비올로 와인을 마시면 초반 떫은 타닌감에 입술이 바짝 마르거나 강한 신맛에 온몸이 움츠러들기도 한다. 반면 잘 숙성되면 산도와 당도, 타닌 등 구조감이 좋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비꽃과 타르, 자두 등의 아로마가 서서히 올라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정통 네비올로 와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숙성 끝판왕 ‘바롤로 체레퀴오 리제르바’를 살펴보자. 와이너리 미켈레 키아를로는 최소 6년간 오크 숙성, 3년간 병 숙성을 거친 후 출시한다. 수입사는 금양인터내셔날. 올해 마시기 좋은 빈티지는 2015년이다.
첫 잔부터 검붉은 과실향과 스파이시한 맛이 다가온다. 집중하면 피에몬테 지역 특산물인 트러플 등 복합적인 풍미도 잡을 수 있다. 기름진 붉은 육류와 함께 마시면 더 좋다.

이어 ‘팔레토 레로케 리제르바’는 피에몬테 지역 네비올로 와인 대표선수다. 오크 배럴 32개월, 병입 후 30개월 등 총 62개월의 긴 숙성과정을 거쳐 출시된다.



와이너리 브루노 지아코사의 연간 생산량은 1만 병 정도. 더 놀라운 점은 기억도 가물거리는 2013년 빈티지 시음 적기는 2022년부터이며 최대 기간은 32년 후인 2045년이라고 수입사 신세계L&B는 설명한다.

결국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진정한 네비올로의 맛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돋보기] 몬테풀치아노에는 ‘몬테풀치아노 포도’가 없다

이탈리아 와인이 어려운 것은 지역과 포도 품종 명칭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혼란스럽다.

예를 들어 ‘몬테풀치아노 다브루초(Montepulciano d’Abruzzo)’는 중부 해안 아브루초 지역에서 몬테풀치아노 품종으로 양조한 와인을 말한다. 반면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의 몬테풀치아노는 마을 이름이다. 즉 몬테풀치아노 마을에는 몬테풀치아노 품종의 포도가 없다. 대신 산지오베제 포도가 재배된다.

비슷한 발음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브루넬로는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산지오베제의 또 다른 이름이고 몬탈치노는 토스카나주 시에나에 있는 지방자치단체 이름이다. 즉 몬탈치노 마을에서 생산된 산지오베제 와인을 말한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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