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18일 09:4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K E&S가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 전에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콜버그크래시스로버츠(KKR)가 보유한 3조135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했다. 당장 3조원을 돌려줄 여력이 안 되는 SK E&S는 '알짜' 사업으로 꼽히는 도시가스 사업을 내줄 것으로 보인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 E&S와 SK이노베이션이 맺은 합병 계약서엔 선결 조건으로 KKR이 보유한 RCPS를 합병이 완료되기 전까지 소멸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사의 합병 비율 역시 RCPS가 소멸될 것을 전제로 산정했다. 만약 RCPS가 합병 완료 전까지 소멸되지 않으면 합병 자체가 무산된다.
RCPS를 소멸하기 위한 방법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SK E&S는 유상감자와 상환, 기타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 E&S가 보장해주기로 한 이자까지 고려하면 3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금액을 당장 현금으로 상환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이 적자에 허덕이는 SK온을 살리기 위해 추진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현금으로 RCPS를 상환하기 쉽지 않다.
SK E&S는 결국 도시가스 사업부를 KKR에 넘기는 현물 상환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SK E&S는△강원도시가스 △영남에너지서비스 △코원에너지서비스 △부산도시가스 △전북에너지서비스 △전남도시가스 △충청에너지서비스 등 SK E&S가 지분 100%를 보유한 도시가스사업 관련 자회사 일곱 곳을 RCPS의 기초자산으로 설정했다. SK E&S는 일정 내부 수익률(IRR)을 보장해주고 현금으로 RCPS를 상환하거나 이 기초자산들을 넘겨 현물 상환하는 방식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이번 합병의 외부평가 업무를 맡은 한영회계법인도 SK E&S가 시살상 도시가스 사업부를 KKR에 넘겨 RCPS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봤다. 한영회계법인은 평가의견서를 통해 "RCPS의 계약 조건을 고려했을 때 보통주로의 전환이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으며, 상환 시에도 현금상환보다 현물상환이 유리하다"며 "순자산가액에 포함된 현물상환 자산(7곳의 도시가스 자회사)의 금액을 차감해 순자산가액 중 보통주 순자산가액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SK E&S의 자산가치를 책정할 때 SK E&S가 도시가스 사업부를 내주고 RCPS를 상환할 것을 가정해 일곱 곳의 도시가스 사업 자회사는 빼고 계산했다는 얘기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은 1 대 1.19로 책정됐다. 시장의 예상보다 SK E&S에 불리하게 나왔다. 그럼에도 KKR이 별다른 반발을 하지 않은 건 합병 전에 RCPS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합병을 위해 SK E&S의 핵심 사업인 도시가스 사업을 내줘야 한다는 점이다. 도시가스사업은 지난 1분기 기준 SK E&S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부문이다. SK E&S는 지난해 도시가스사업으로 5조189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7073억원에 달했다. 도시가스사업은 사실상 과점 사업으로 SK E&S는 시장 점유율이 22.7%에 달하는 1위 사업자다. 일각에선 캐시카우인 도시가스 사업을 내주면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 취지가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SK E&S는 RCPS를 일단 소멸시킨 뒤 합병법인이 KKR로부터 또 다시 자금을 끌어들이는 방안도 협상 중이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자금을 돌려 막을 경우 도시가스 사업부를 지킬 순 있지만 SK E&S가 향후 KKR에 보장해줘야 하는 수익률은 더 높아지고, 핵심 자산을 담보로 내줘야 할 가능성이 크다. 협상의 주도권을 KKR이 쥐고 있는 만큼 SK E&S 입장에선 KKR의 무리한 요구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SK E&S 관계자는 "KKR과 RCPS의 기존 발행 취지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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