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무혐의 받았어요"…음주운전 '꿀팁'에 8만명 몰렸다 [이슈+]

입력 2024-07-18 20:00   수정 2024-07-18 21:21


"2009년, 2017년 두 차례 면허취소 후 올초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음주운전 '3진 아웃'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무혐의 처분으로 구제받았네요. OO카페 덕분입니다."

지난 1월 누리꾼 A씨가 이른바 '음주운전 구제 카페'로 불리는 한 온라인 카페의 구제 후기란에 올린 글이다. 그는 "카페를 운영하는 행정사 조언대로 양형 자료에 '혈중 알코올 농도 상승기(음주 후 30~90분간 최고치를 찍은 알코올 농도가 시간당 평균 0.015%씩 감소한다는 것)'를 주장했다"며 해당 처분에 대한 결과 통지서까지 공개했다. 이에 많은 누리꾼들은 "(상황이) 저랑 비슷하신데 좋은 기운 받아 간다", "부럽고 축하한다"는 등 반응을 보였다.

음주운전에 따른 면허 정지 등 행정 처분을 구제해주는 음주운전 구제 카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각종 양형 자료가 제공될 뿐만 아니라 카페 회원들끼리 음주운전에 걸렸을 때 '꿀팁'까지 공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선 이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음주운전 재범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회원수 8만명' 달하기도…회원 간 각종 정보 공유
삼성화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시행 이후에도 음주운전 재범율(2회 이상 적발)은 여전히 40%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지난해 재범율은 42.3%로 전년보다 0.1%포인트 오르면서 오히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까지도 음주운전 재범 사례가 잇달아 전해진다. 앞서 두 차례의 음주 교통사고로 집행유예를 받았던 한 30대 남성은 이달 10일 서울 중랑구에서 강원도 원주시까지 100km 넘게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올 4월 음주운전으로 입건된 40대 화물차 기사 역시 같은 범죄로 이미 4번이나 처벌받았던 상습 음주운전자였다.

이처럼 음주운전이 근절되지 않는 가운데 음주운전 구제 카페는 활황이다. A 네이버 카페는 현재 회원 수가 8만명에 달하며, 이달에만 30여개의 음주운전 구제 신청 글이 올라왔다. 회원 수가 4만명이 넘는 B 카페에는 아예 회원들끼리 경찰조사 전후 형사 절차를 묻고 답하는 게시판이 개설돼있다.

음주운전 구제 카페는 보통 행정사가 자신의 영업을 위해 전화번호를 내걸고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음주 측정거부, 무면허 운전, 뺑소니 등 다른 교통 범죄들에 대서도 전문적인 양형 자료가 올라와 있다. 심지어 음주운전 적발 후 자택으로 등기 서류가 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설명한 게시물도 발견됐다.

한 카페는 아예 직업별로 면허 구제 시 필요한 자료와 법리를 연재물처럼 올려놓기도 했다. 가령 영업직 회사원에겐 지방 출장을, 법인 대표의 경우 운전기사가 없다는 점을 '생업을 위해 면허가 필요한 이유'로 주장하란 식이다.

이러한 카페들은 음주 운전자들이 각종 정보를 공유하는 일종의 커뮤니티로 활용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엔 '위드 마크(혈중알코올농도 역계산법)'에 대한 질문이 늘었다. 알코올 농도 0.147로 면허 취소를 받았다는 한 회원은 "음주운전을 하며 졸다가 간판을 박았다"며 "혹시 카카오톡 메시지 발송 기록도 위드마크 근거로 쓸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

또 다른 회원이 "오후 8시에 호흡 측정 후 40분 후 채혈을 했는데 위드마크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문의한 글에는 "대법원 판례 기준 채혈 수치가 0.079 이하면 문제없다"는 답변이 달리기도 했다.
"법적 방어권 정당하지만 '재범' 조장해"
물론 음주운전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변호사와 재판 전략을 짜거나 행정 처분에 대한 구제 노력을 기울이는 등 법적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로 구제 카페를 운영하는 행정사들도 "음주운전 행위는 잘못됐다"면서도 "죄의 경중과 상황에 따라 필요한 구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 같은 카페들이 음주운전 재범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음주운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상습성'이다. 따라서 재범율이 특히 더 높다"며 "법원에서 양형 기준을 높이는 추세라도 이에 맞춰 음주 운전자들이 취할 수 있는 재판 전략도 날로 발전한다면 재범율을 결코 낮출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무리 음주운전에 적발됐다고 하더라도 행정사를 통한 구제 노력 자체를 규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이처럼 음주운전 관련 처벌을 줄이는 데 일조하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쉽게 구제받은 음주 운전자가 같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상습적인 음주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오는 10월 25일부터 처벌 5년 이내 음주운전 재범자는 방지장치가 설치된 자동차만 몰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을 개정한 상황이다. 음주운전 방지 장치는 차량 시동을 걸기 전 운전자 호흡을 검사해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은 경우에만 시동이 걸리도록 한 장치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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