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사고에 늦었다 생각"…25만명 몰린 英 페스티벌엔 드론 떴다 [현장+]

입력 2024-07-18 21:10   수정 2024-07-18 21:35


"우리나라 관객이 침착하고 조용한 편이라고 해요. 그래서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었는데 이태원 사고 발생하는 걸 보니 '이미 늦었구나' 싶었습니다."

영국 최대 규모 음악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서는 어떻게 25만여명의 관객을 관리할까. 영국의 공연 및 행사 군중 안전 전문가가 현장에서 체득한 살아 숨 쉬는 노하우를 한국 공연 종사자들에게 전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에서 '2024 공연 안전 국제교육(군중 관리)'이 진행됐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 공연장안전지원센터가 기획·진행하고, 서울문화재단이 장소를 지원한 이번 교육은 오는 19일까지 총 3일간 이어진다.

주최 측에 따르면 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교육에는 극장 무대감독부터 하우스매니저, 공연장 안전관리담당자, 대테러 안보연구원, 공연 및 축제 기획자, 동국대학교 안전공학과, 청와대재단 등이 참석했다.

강사로는 영국의 교육 및 컨설팅 기관 '스퀘어 미터 그룹(Square Meter Group)' 로비 나이쉬 군중안전 컨설턴트, 션 톨리 수석 트레이너가 나섰다.

로비 나이쉬는 군중 안전 분야에서 20년 이상 전문지식을 쌓아온 인물로, 영국 유명 아티스트의 월드투어에서 보안을 책임지는 근접 경호 관리자로 경력을 다져 버킹엄셔 뉴 대학교에서 군중 안전 관리 학위까지 취득했다.

션 톨리는 보안 및 군중 안전 부문에서 30여년의 경력을 보유한 전문가다. 영국 군대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은 폭탄해체반의 일원이었던 그는 수년간 크림즈필드 페스티벌, 아일 오브 와이트 페스티벌, 던스폴드파크 에어쇼, 2022년 사운드스톰 페스티벌 등에 참여했다. 칸예 웨스트를 경호한 경력이 있으며,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군중 안전 관리 레벨 5 어워드를 보유 중이다.


로비는 "며칠 전 글래스턴베리에 갔다 왔다. 관객이 25만명가량이었다"고 말했다. '글래스턴베리'는 영국 최대 규모의 음악 축제로 매년 2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올해는 콜드플레이, 에이브릴 라빈, 두아 리파 등과 함께 K팝 그룹 세븐틴이 해당 페스티벌에서 무대를 펼쳐 화제가 됐다.

로비는 "일각에서 행사 기획이 뭐가 어렵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200명이 오는 공연이든, 50만명이 오는 공연이든 공통으로 안전 대응 계획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을 예시로 들었다. 로비는 "메인 무대인 피라미드 스테이지 앞에 10만명 정도가 몰린다. 무대가 끝나면 그 인파가 다른 공연장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동선을 잘 파악하고 예측해야 한다. 올해는 다행히 드론이 있어서 대기 중에 항상 드론을 띄워놓고 살펴봤다. 그 정보와 계획을 가지고 이동의 흐름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게 바로 군중 역학 관리"라고 설명했다.

놀라운 점은 안전관리자인 이들이 무대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로비는 "관람객들이 각기 다른 무대로 가서 보는데, 관중 과밀이 있어서 6차례 공연을 중단시켰다"면서 "관객들이 한 곳에 몰리지 않도록 프로그래밍이 잘 돼야 한다. 이게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주최 측이 가져야 할 스킬인 거고, 우린 현장 상황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연 중단을 넘어 어떤 무대는 아예 폐쇄하기도 한다. 어딜 가도 날 반기지 않지만, 안전이 최고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험하다'고 느끼는 척도와 군중 심리 및 특성을 잘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로비는 "제곱미터당 2~3명으로 계획을 세우면 안전보건담당은 그 기준이 되면 곧바로 위험하냐고 묻는다. 그렇진 않다. 무대 앞이라면 제곱미터당 3~4명 혹은 5명이 넘을 수도 있다"면서 "동적인 움직임과 내 행사에 오는 사람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예상하는 게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나라마다 법이 다르고 상황이 달라서 안전에 대해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건 없다"면서도 "군중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발생했던 끔찍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리스크 관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로비는 "주최 측은 행사를 어떻게 관리하고 운영할지에 대한 안전 관리 계획을 세심하고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경찰·소방·보안 담당자 누구든 보고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작성해야 한다. 또 군중 관리 계획으로 얻고자 하는 목표도 명시돼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에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닐 테다. 엔데믹 전환 이후 국내에서는 공연 소비가 폭증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 발표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 전체 공연의 티켓 판매액은 총 29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2억원가량 높았다. 공연실적(공연 건수, 회차, 티켓예매 수, 티켓 판매액)은 지난 4개월을 포함해 역대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대규모 공연도 여럿 흥행에 성공했다. 세븐틴과 임영웅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고 각각 10만명, 7만명을 동원했고, '서울재즈페스티벌 2024'에는 5만명, '2024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에는 9만명,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코리아'에는 7만명이 몰렸다.

한진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공연장안전지원센터 연구원은 "2019년 처음으로 군중 관리에 대한 공연 안전 국제교육 시범 교육을 진행했다. 국내에 관련 교육이 부재했다. 한국공연장매니저협회 등에서 관객 안전 교육을 진행하긴 하지만, 이게 군중으로 확대되면서 무대 기계나 시설을 관리하는 분들에게 안전을 다 맡아달라고 하긴 어렵겠더라.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팬덤이 크면 압사 사고가 일어났지만, 이제는 대부분 앉아서 공연을 보거나 야외 페스티벌에서 음주를 함께 즐기는 문화가 되지 않았냐. 그러다 보니 점점 규모가 커지는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 관객이 침착하고 조용한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규모에 비해 큰 사고가 난 적이 그다지 없었다가 이태원 사고가 발생하면서 '시기상조가 아니구나. 이미 늦었다'고 판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에는 경찰·소방 분야에서 군중의 안전을 연구한 내용은 있어도 공연·엔터테인먼트와 접목한 접근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원은 "올림픽이나 F1 경기가 열렸을 때 부수적으로 여러 공연이 진행되는데 군중 관리를 할 분이 없더라. 총괄할 분이 없었다"면서 "결국 해외에서 자문받는 수밖에 없는 형태가 되는 것 같다. 독일, 영국, 미국 등은 군중 안전 자체를 학위로써 다룬다. 우리나라도 단순히 콘서트 경호 수준에서 벗어나서 전문적인 인력 양성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을 밝혔다.


서울문화재단은 공연 안전의 중요성을 절감해 KTL 공연장안전지원센터와 꾸준히 협력해 오고 있다. 이번 국제교육을 비롯해 법정·비법정 교육 다수가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진행됐다.

강지훈 서울문화재단 무대기술팀 감독은 "안전한 공연 문화는 한 사람의 스페셜리스트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무대 감독, 하우스 매니저, 기획자 등 종사자는 물론 실연자, 아티스트들도 위험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공연을 멈춘다는 상식과 마음가짐이 장착돼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공공극장으로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향후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극장을 투어하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무대 안전 교육까지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한 연구원 역시 "가장 큰 목표는 우리 자체의 교육을 개발해 국내 역량과 기반을 만들고 싶다는 거다. 다음 스텝은 국내에서 개발하는 군중 안전 관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서 연구를 진행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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