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리필을 거절한 이 씨에게도 속사정은 있다. 그는 최근 상추 4kg을 9만원 초반대에 구입했다. 평년 2만~3만원에 비해 최대 네 배가량 비싼 가격이었다. 이씨는 “손님들이 야박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 최근 상추 가격이 너무 올라 감당이 어렵다”며 “손님들이 상추 양이 적다며 항의할 때마다 원가 생각이 나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장마와 폭염 피해로 채소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식당 인심이 팍팍해지고 있다. 특히 상추, 깻잎 등 쌈채소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들 식재료를 주로 내놓는 고깃집이나 횟집 등을 중심으로 비용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1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농산물 가격은 장마가 시작되면서 줄줄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전날 기준 적상추 소매가격은 100g에 1996원으로 한 주 만에 62.7% 올랐다. 작년보다 10.4% 비싸고 평년 가격과 비교하면 40.7% 높은 수준이다. 장마 시작 전인 6월 중순만 하더라도 넘쳐나던 상추가 장마가 시작된 7월로 접어들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깻잎 가격도 100g에 2344원으로 일주일 새 13.5% 올랐다. 1년 전, 평년보다 각각 2.6%, 21.0% 상승했다. 배추는 여름철 재배면적 감소에 따라 가격이 올랐다. 배추 소매가격은 포기당 4846원으로 1주 새 7.7% 올랐다. 작년과 평년보다 각각 18.0%, 8.2% 가량 오른 수준이다. 이밖에 시금치 소매가격은 100g에 1507원으로 일주일 만에 12.6% 올랐다. 1년 전보다 6.4% 올랐고, 평년보다는 38.1% 높다.
지난주 집중 호우가 쏟아지며 농작물 대부분이 물에 잠긴 탓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지난 12일 기준 전국 농작물 침수 면적은 1만756㏊(헥타르·1㏊는 1만㎡)로, 축구장 1만5000개를 합친 넓이를 넘어선다.
일부 식당들은 반찬과 메뉴를 교체하고 있다. 서울 중구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윤모 씨(45)는 상추, 깻잎 등 쌈채소 반찬을 없앴다. 원래는 기본으로 나가는 찬이었지만 이제는 고추나 마늘, 쌈무 등 다른 재료나 반찬을 더 많이 내놓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인근 한 고깃집에선 아예 셀프바를 두고 상추 대신 알배추를 들여다 놨다. 이 식당 주인은 “아무래도 알배추가 있으면 상추를 덜 찾는다”고 말했다.
동네 마트 등지에서 장을 보는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6월 하순만 해도 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상추는 한 봉지에 1200원이면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름여가 지난 지금 같은 용량의 상추 가격은 거의 3000원에 이르고 있다. 소매가격 역시 2배 넘게 오른 상황이다. 경기 지역의 한 중소규모 식자재 마트에선 상추, 깻잎 진열대가 텅 비어 있었다. 이 마트 관계자는 “거래처 채소들 상태가 영 좋지 않고 가격도 비싸 그냥 안 들여왔다”며 “어차피 가격대가 너무 높으면 손님들도 잘 사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채소류 가격이 앞으로 더 뛸 것으로 보고 있다. 장마 이후에도 폭염·태풍 등 여름철 자연재해로 인해 채소 수급에 차질이 이어진다는 전망이다. 올해 배추 등 재배 면적이 평년보다 5%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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