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와 마약, 폭력과 범죄…. 해로운 것들로 가득한 1980년대 미국 뉴멕시코. 동네 체육관에서 일하는 직원 루(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후줄근한 나시 차림으로 막힌 변기를 뚫는 게 일상이다. 올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막힌 변기를 비롯해 운동광들의 꿈틀대는 근육, 땀줄기, 확장한 모공 등을 클로즈업하는 등 원초성을 부각하며 시작한다.
가족사로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루에게 히치하이킹을 하던 보디빌더 잭키(케이티 오브라이언)가 찾아온다. 매력적인 이방인과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흔하지만, 여성이 웨이트를 하는 것조차 드물던 시대에 보디빌더 여성이라니. 두 여성은 별다른 사건 없이 곧바로 육체적, 감정적으로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세인트모드’(2019)로 데뷔한 34세 감독 로즈 글라스의 두 번째 작품이다. 두 여자의 광기 어린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연출은 과감하다. 사랑이 광기로, 또 폭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소위 ‘센’ 설정과 전개가 더해지는데 마치 ‘마라탕후루’에 대중이 열광하듯, 자극적인 요소들을 화려하게 펼쳐낸다. 그야말로 도파민이 치솟는다.
화면 전환은 유튜브 쇼츠를 이어 보는 것처럼 빠르고 정력적이다. 귀를 꽝꽝 울리는 EDM은 이를 증폭하고, 레트로풍 미장센은 퇴폐적이지만 스타일리시하다. 영화의 화룡점정은 보디빌딩 대회 장면. 일련의 사건으로 제정신이 아닌 잭키는 오랜 꿈이던 보디빌딩 대회에 나갔지만,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고야 말았다. 이때 영화는 스테로이드 과복용과 살인 후유증 등을 겪는 혼란한 잭키의 정신 상태를 영리한 플래시백으로 표현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케이티 오브라이언의 빼어난 캐릭터 소화력도 돋보인다. 이들의 대사는 종종 유치하고 진부하지만 시각적인 조화가 이를 잠재운다. 사랑 때문에 헐크가 돼 버린 육식남 대신 보디빌딩으로 벌크업 중인 잭키가 있고, 조직 범죄자의 딸이라는 극적인 사연을 지닌 루가 있다. 잭키의 육체성과 루의 심약함은 광기를 부추기는 시너지로 작용한다.
‘사랑하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이들의 퇴폐적이고 낭만적인 사랑관은 지저분한 현실 속에서 역설적으로 순수하게 비친다. 이미 마을에는 범죄 조직과 경찰의 꿍꿍이, 약물 중독과 가정폭력 등 구악이 만연한 상황. 감각적이고 섹시하게 그려지는 두 여자 캐릭터와 달리, 극 중 최고 빌런 랭스턴(에드 해리스)은 기괴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애완 벌레를 짝짝 씹어먹는 등 추하디추하게 묘사된다. 잭키의 범죄로 인한 시체의 모습은 꽤나 잔인하지만, 한편으론 통쾌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패스트라이브즈’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아온 제작사 A24와 진보적 감성의 로즈 글라스가 의기투합한 덕이다. 영화 커뮤니티 플랫폼 키노라이츠가 투자하며 시네필들의 기대를 모았다. 여성 커플의 구원과 탈출이라는 점에서 ‘델마와 루이스’나 ‘아가씨’가, 퇴폐적이고 매력적인 범죄 이야기라는 점에서 ‘펄프픽션’ 등이 연상되기도 한다. 영화는 기시감과 파격 사이에서 다소 산만하지만 화끈하게, 거침없이 질주한다. 104분.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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