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첩보 조직 MI5엔 변방의 조직 ‘슬라우 하우스(slough house)’가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똥통 부서’쯤 된다. 슬라우 하우스의 지부장 잭슨 램(게리 올드먼)의 사무실은 반드시 창문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심지어 그를 심문하려면 취조실에도 창문이 있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쯤 몸을 씻는 그는 줄곧 방귀를 뀌는데 그 냄새가 보통 지독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램은 부하들을 ‘슬로 호시스’, 즉 ‘느려 터진 말들’이라고 부른다. 그건 램을 포함해 본부에서 슬라우 하우스 전체를 부르는 호칭이다. 한마디로 낙오자들이라는 의미다. 이들에겐 일다운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몇 년 치 주차 위반 딱지나 들여다보게 하거나 지부 사무실 밑에 있는 중국집에 점원 중 누군가가 바뀌었다면 그 뒤를 알아봐서-만약 그가 불법체류자면 은근히 압력을 가해-램이 적어도 다섯 끼 정도 공짜로 먹을 수 있게 하는, 사찰 아닌 사찰 업무만 할 뿐이다. 램은 그걸 얻어먹고 또 방귀를 뀐다.
램 밑에는 사고뭉치 전력자들만이 모여 있다. 리버 카트라이트(잭 로던)는 최근 좌천됐다. 열혈 첩보원이지만 가상훈련에서 수백 명의 폭탄 희생자를 만들어낸 벌이다. 카트라이트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 젊은 여성 첩보원 시드 베이커(올리비아 쿡)의 전입 사유는 다소 불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본부를 지휘하는, 뱀 같은 두뇌를 지닌, 부국장 다이애나 터버너(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지령에 따라 램을 염탐 중인 것으로 보인다. 램은 이 사실을 아는 척 모르는 척 그녀에게 자신의 역정보를 흘린다. 램의 개인 비서는 캐서린 스탠디시(시스키아 리브스)다. 그녀의 죽은 남편은 과거 램의 동료 첩보원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총을 입에 물고 자살했으며 램은 스탠디시의 반역죄를 덮기 위해 자기 비서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해커 전력의 로디 호(크리스토퍼 청)를 포함한 ‘낙오자’들의 일상이 겹친다.
‘슬로 호시스’는 기본적으로 1975년 시드니 폴락이 만든 매력적이고 섹시하고 우울하면서 우아하기까지 한 영화 ‘코드 네임 콘돌’의 상황 설정을 따라간다. ‘코드 네임 콘돌’의 등장인물들은 아메리칸 문학사 협회 사무국 직원이다. 이들은 하루 종일 국내외에서 나온 온갖 출판물을 읽고 여기에 나오는 음모론을 정리해 위에 보고한다. 아메리칸 문학사 협회는 미국 CIA의 외곽조직이며 첩보원들이 밀려난 변방 조직이다.
요원명(名)이 콘돌인 주인공 조셉 터너(로버트 레드퍼드)는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은 느리고 심드렁한 출근길에 직원들 전부가 괴한들에 의해 잔혹하게 사살된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자신이 죽지 않은 이유는 그날따라 지각했기 때문이고 이 모든 학살이 자신을 찾아 사살하기 위한 명령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CIA 윗선은 터너가 협회 활동으로 보고한 음모이론의 뭔가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고 차제에 하부 조직 하나쯤 완전히 정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건 하찮은 요원 모두를 제거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조직의 핵심 비밀을 지키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슬로 호시스’는 영국 드라마로 시즌 3까지 공개됐다. 한 시즌은 6부작이다. 첩보 스릴러에 관한 한 미국은, 아니 그 어느 나라건 영국을 따라갈 수가 없다. 영국에는 007시리즈의 작가 이언 플레밍과 존 르 카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존 르 카레를 따라갈 수 있는 첩보 이야기의 산실은 영국 외에는 없다. 오죽하면 그에게 ‘경(Sir)’을 사사했겠는가.
‘슬로 호시스’의 주인공 잭슨 램의 캐릭터는 존 르 카레의 얼터 에고인 조지 스마일리에서 가져온 셈이다. 물론 외모와 생김은 전혀 다르다. 스마일리는 깔끔하다. 램은 늘 구멍 뚫린 양말에 구겨진 와이셔츠, 비뚤게 맨 넥타이 차림이다. 스마일리는 영국 신사다. 램은 욕을 입에 달고 산다. 둘의 공통점이라곤 비상한 머리를 지니고 늘 앞일을 몇 수 앞서서 내다볼 줄 안다는 것뿐이다.
잭슨 램의 캐릭터는 조지 스마일리와 다르지만, 이 정도는 추측할 수 있다. 스마일리처럼 신사 같은 삶을 살았던 램이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동료 14명을 순식간에 잃었고, 그 명단을 누군가 유출했는데 그게 자신의 오랜 친구였어서 그를 직접 처단했다. 그렇게 인생의 빛을 잃었다. 첩보원 직을 그만둘 수도, 계속할 수도 없어서 아무도 찾지 않는 부서를 스스로 택한 뒤 씻지도 않고 술과 담배에 절어 유령처럼 살게 된 것이다. 스마일리 같은 인물이 나락에 떨어지면 램이 됐을 거라는 얘기다.
‘슬로 호시스’는 뛰어난 작품이다. 재미도 철철 넘친다. 위트와 유머의 지적 수준이 높다. 왜 이 드라마가 시즌 5까지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슬로 호시스’는 첩보의 세계가 냉엄한 척, 사실은 우리들의 인생사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도 언제든 슬로 호시스가 될 수 있는 처지다. 첩보 조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냉혹하고 쌀쌀맞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슬로 호시스’는 바로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모두 이 두 가지는 지켜야 한다. ‘모스크바 규칙. 뒤를 조심할 것. 런던 규칙. 늘 몸을 숨길 것.’
세상살이에 있어 이건 매우 중요한 처세다. 늘 뒤를 조심하고 몸을 숨기라. 그래야 산다. ‘슬로 호시스’가 던지는 삶의 명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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