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의 여름은 공원에서 시작해 공원에서 끝난다. 친구, 연인, 가족들이 미국 뉴욕의 드넓은 공원에 나와 여유로운 한나절을 즐긴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을 조금만 비켜나면 아름드리나무가 선물하는 그늘에서 영화제와 콘서트 등을 온종일 즐길 수 있다. 맨해튼과 브롱크스 브루클린 등 뉴욕 전역의 잔디 위에서 시간을 잊고 피크닉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생 일몰’도 마주할 수 있다.
‘웨이브힐 선셋 웬즈데이’는 브롱크스에 있는 공원 ‘웨이브힐’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열린다. 맨해튼의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문화 행사를 즐길 수 있는 야외 이벤트. 미국의 전통적 포크 음악 장르 중 하나인 블루그래스를 연주하는 트위스티드파인, 콜롬비아 출신 하피스트인 에드마르 카스타냐다가 올해 무대에 선다. 성인은 15달러, 학생과 노인은 10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하고 6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선 여름마다 DJ와 다양한 아티스트의 콘서트가 열린다. 미술관 입장권만 있으면 티켓을 사지 않아도 된다. 이번 주말인 20일엔 미국의 시인, 음악가, 활동가인 카마유 아유와(예명 무어 마더), 필라델피아 출신 DJ 하람이 출연한다.
맨해튼 브라이언트파크는 월요일 밤마다 무료 영화제를 연다. 오는 22일엔 ‘시네마 천국’, 29일엔 ‘10일 안에 남자 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상영한다. 선착순으로 들어갈 수 있고, 주변에 즐비한 맛집에서 음식을 포장해 느긋하게 즐기는 걸 추천한다.
브루클린의 프로스펙트파크 야외 공연장 ‘레나 혼 밴드셸’에선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무료 음악 행사인 ‘브릭(BRIC) 셀러브레이트 브루클린’을 즐길 수 있다. 뉴욕 출신 라틴재즈 음악가인 조 바탄(19일), 네오 소울 및 펑크 음악가 메셀 은데게오첼로(8월 2일), 벨기에 출신 일렉트로닉 듀오 샬롯 아디제리와 볼리스 푸풀(8월 10일) 등이 무대에 오른다.
● ART in 뉴욕
뉴욕을 대표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도 숨기고 싶은 흑역사가 있다. 1969년 진행했던 전시 ‘할렘 온 마이 마인드’가 대표적이다.
뉴욕시의 할렘은 1920~1940년대 일자리를 찾아 남부지방의 흑인들이 뉴욕시를 비롯한 북부로 이주해 오는 ‘대이민’ 시대를 거치며 형성됐다. 흑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부흥하며 ‘할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할렘 온 마이 마인드 전시’는 이처럼 수십 년간 형성돼 온 흑인들의 문화를 표현하고자 기획됐다. 하지만 전시에는 흑인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이 거의 없었다. 신문 기사와 사진, 역사 도표 등 성의 없는 자료들만 내놓으며 “흑인의 삶을 그들의 눈이 아니라 백인의 시선으로만 보여줬다”는 혹평을 받았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회 ‘할렘 르네상스와 대서양 횡단 모더니즘’은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기획됐다. 흑인 예술가들이 현대 생활의 일상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녹여낸 ‘리얼 라이프’를 잘 담았다.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핍박받고 외면받았던 암흑의 시기를 예술로써 버텨낸 작가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뭉클한 감정이 몰려온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뒤늦은 자성으로 나온 이 전시는 “이제야 흑인 예술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할렘 르네상스와 대서양 횡단 모더니즘’은 미국 흑인문화를 다양하고 편견 없는 시각으로 표현했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과 그에 대한 저항정신도 담았지만, 할렘 르네상스로 꽃피웠던 흑인 문화를 순수하게 조명할 수 있는 작품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아치볼드 제이 모틀리 주니어의 ‘블루스’(1929)는 재즈 클럽에서의 활기찬 밤을 묘사한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대화를 나누는 그림이다. 빨간색, 푸른색과 같은 강렬한 색채로 에너지가 느껴지는 데다 ‘블루스 음악’의 메타포도 있다. 블루스는 흑인 음악의 정수라서다. 모틀리는 이 작품을 통해 흑인 예술이 주류 미술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제이컵 로런스의 ‘풀 팔러’(1942)는 당구장에서 형성된 흑인 커뮤니티의 모습을 큐비즘을 통해 나타냈다. 풀 팔러는 6개의 구멍에 차례대로 공을 넣는 포켓볼. 당시 할렘 흑인 사회에서 당구장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장소 이상이었다.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경제적 여건이 열악했던 당시, 흑인들이 여가를 즐기고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로라 휠러 워링의 ‘엄마와 딸’(1927)에는 피부색이 다른 두 여인이 나온다. 당시 흑인 사회에서 다양한 피부색에 따라 차별이 존재하는 ‘컬러리즘’을 표현했다. 메타복스 워릭 풀러의 1919년 작인 ‘메리 터너를 기리며: 폭력적인 군중에 대한 침묵의 항의’는 석고로 된 조각이다. 당시 임신한 상태에서 린치 폭력으로 숨진 메리 터너를 기리고자 만든 작품이다.
‘할렘 르네상스와 대서양 횡단 모더니즘’은 7월 20일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이 전시를 놓쳤다고 아쉬워 말라. 뉴욕 아트디자인박물관(MAD)에서 9월 22일까지 열리는 소냐 클라크의 대규모 회고전 ‘우리는 서로다(WE ARE EACH OTHER)’가 있다.
클라크는 전통적인 섬유 기술을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흑인 예술가다. 손으로 짠 천, 자수, 염색 등을 사용해 과거의 장인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머리카락, 빗 등 상징적인 재료를 사용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머리카락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문화를 상징하며, 빗은 인종 차별과 문화적 유산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하이뮤지엄에서 열린 전시가 장소를 옮겨왔다.
스펙트럼을 더 넓히고 싶다면 8월 11일까지 개최되는 휘트니 비엔날레에 가보자. 1932년 시작된 휘트니 비엔날레는 현재 2년에 한 번씩 열리며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의 주제를 아울러 현대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로 젊은 신예 작가들을 초청하고 있으며 신선하고 파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올해 주제는 ‘실제보다 더 나은’이다. 이민과 낙태, 인종 문제와 인공지능(AI) 등 현존하는 미국의 뜨거운 주제를 예술로 소화했다.
올여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간다면 스타 작가 알렉스 카츠(97)를 만날 수 있다. ‘알렉스 카츠: 계절들’은 말년에 이른 그가 지난 3년간 포착한 사계절과 메인주 링컨빌의 여름 풍경을 전시했다.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와 단순한 형태가 압도적이다. 지금도 뉴욕 스튜디오에서 매일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캔버스를 채우고 있는 카츠의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단면들은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싱그럽고 아름답다. 전시는 9월 8일까지 개최된다.
매년 7월 20일 전후 뉴욕 여행을 계획한다면 에드워드 호퍼를 기억하자. 뉴욕의 무드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호퍼는 올해로 탄생한 지 142번째. 호퍼 작품 3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휘트니미술관은 미술관 앞에서 나이악 호퍼하우스까지 왕복 60마일(약 96.5㎞)의 자전거 타기 행사 등 ‘해피 호퍼 데이’를 열고 그를 추모한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