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6시,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월가 헤지펀드 대표의 말이다. 이곳은 뉴욕의 상징적 건축물 플랫 아이언에서 가까운 32번가의 파인다이닝 ‘주아’. 그는 “다양한 재료의 특성을 잘 살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라고 했다.
전 세계 미식 트렌드를 주도하는 뉴욕 레스토랑 업계에선 한식이 화두다. 월가와 예술계 등 뉴욕 사교계에서 관심을 쏟는 파인다이닝은 물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캐주얼 다이닝까지 그 범위가 넓고도 깊다.
메뉴는 매달 바뀌는 일곱 가지 코스 요리. 김밥, 죽, 생선구이 등을 재해석한 주아의 요리는 이름도 물회(Mulhoe), 죽(Jook), 오리와 반찬(Duck & Chan), 고구마 주악(Goguma Juak) 등 한식 명칭을 그대로 옮겼다. 재료의 특성을 과감하게 살린 점이 특히 매력 있다. 김밥을 재해석한 주아의 시그니처 메뉴 ‘캐비어 김’과 ‘우니 김’이 대표적이다. 부각처럼 바삭한 김과 김치, 참치 타르타르 캐비어가 조화를 이룬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아삭아삭한 식감이 느껴져 물어보니 ‘차요테’라고. 한국의 ‘박’과 비슷하다. 상큼하게 절인 도미회에 동치미 국물과 올리브 오일을 끼얹은 물회도 별미다. 물회에 숯불에 그을린 옥수수와 파의 일종인 차이브를 곁들여 내는 스모키향이 예상치 못한 풍미를 더한다. 주아의 특별한 점은 ‘불맛’이다. 장작불로 훈제한 오리, 숯불에 구운 서대 등에 불맛이 스몄다. 한옥의 부엌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다이닝 룸에도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숯향이 맴돈다. 주아의 테이스팅 메뉴 가격은 1인당 140달러(약 19만원)다.
나로는 두 종류의 코스 요리를 낸다. 고기가 들어간 일반 코스와 비건 코스다. 가격은 165달러로 같다. 메뉴는 한글을 살렸다. 에피타이저로 전(Jeon)이, 디저트로 화채(Hwachae)가 나오는 식이다. 직원들은 “구운 생선 아래에는 콩으로 만든 ‘강된장’이 깔려 있으니 함께 먹으라”고 설명한다. 나로에선 익숙하지만 조합을 상상하기 어려운 한국 식재료가 결합한다. 첫 접시로 대게 살과 해파리가 함께 나왔다. 한국식 겨자가 들어가 해파리냉채처럼 톡 쏘는 맛이 살아있으면서도, 잣으로 만든 우유를 함께 담아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조화를 이뤘다. 나로가 문을 연 직후 뉴욕타임스(NYT)의 유명 음식평론가 피트 웰스가 “한국 전통요리에서 새로운 마법을 발견했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기사 식당이 화제가 된 건 단지 음식 맛뿐만이 아니다. 현지화하지 않고도 한식 그대로를 구현한다는 점이 매력이다. 손님의 70% 이상이 뉴욕 현지인이나 관광객. 모든 메뉴는 한글이고, 문에도 ‘풀(PULL)’이 아니라 ‘당기시오’가 쓰여 있다. 코리아나 LP판과 1980년대 한국을 연상할 수 있는 레이스 커튼, 뚱뚱한 브라운관 TV 등 향수를 자극하는 한국적인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주류 메뉴판엔 한국 전통주가 가득하다. 백반을 테마로 불고기, 오징어볶음, 제육볶음, 보리비빔밥 중 하나를 택하면 달걀말이, 김, 신김치, 새우장 등 일곱 가지 반찬이 함께 나온다. 1인당 32달러 안팎으로 7첩 반상을 받는다. 계산서와 함께 25센트 동전이 1인당 하나씩 나오는데, 이 동전으로 식당 내 자판기에서 커피나 율무차를 뽑아먹을 수 있다.
서울 마포에서 시작한 돼지곰탕집 ‘옥동식’도 맨해튼에서도 사랑받는 식당이 됐다. NYT가 선정한 ‘2024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100곳’에 곧장 진입했다. 이 목록에 한식당만 7곳. NYT는 “뉴욕 다이닝신을 가치 있게 만든 ‘돼지곰탕’”이라고 호평했다.
뉴욕=나수지/빈난새/박신영 특파원, 이상은 한국경제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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