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옥탑방의 대책 없는 네 남자, 어쩐지 그들을 만나고 싶다

입력 2024-07-22 10:00   수정 2024-07-22 15:11


망원동 8평 옥탑방에 사는 서른다섯 살의 무명 만화가. 이 한 문장에서 이미 이야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하다. 그걸 한 단어로 줄이라면 어렵지 않게 ‘한심’이 튀어나올 것이다. 이 한심한 공간에 더 갑갑한 인물들이 모여든다.

무명 만화가 오영준이 만화를 출간했던 회사의 김부장은 퇴직 후 캐나다로 갔다가 못 견디고 귀국해 옥탑방에 기어든다. 오래전 만화 스토리 강의를 들은 인연으로 영준이 싸부라 부르는 50대 백수 아저씨도 슬그머니 기생을 시작한다.

동네 가야마트 오픈 이벤트 ‘빨리 먹기 대회’에서 김부장과 대결해 승리한 20대 고시생 삼척동자. 그는 영준의 대학 동아리 후배로, 고시원에 방이 있지만 거의 옥탑방에서 살다시피 한다. 상품으로 받은 TV를 옥탑방에 기증해 함께 야구를 본다는 명목으로.

20대 공무원 시험 준비생, 30대 무명 만화가, 40대 기러기 아빠, 50대 백수 아저씨, 대책 없는 네 사람이 8평에서 같이 지낸다고 생각해보라. 30평 아파트에 산다 한들,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답답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마당 넓은 옥탑이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눈앞에 있을 것 같은 그들의 집에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그들의 케미에 합류하고 싶게 하는 작가의 놀라운 글솜씨 덕분이다.
<불편한 편의점> 작가의 첫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는 국내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해외로 뻗어가는 중인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후 11년이 지났음에도 꾸준히 시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다가 <망원동 브라더스>를 접한 독자는 김호연 작가가 펼쳐 보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에 또다시 빠져들게 된다.

‘영화·만화·소설을 넘나들며 온갖 이야기를 써나가는 전천후 스토리텔러’ 김호연 작가는 시나리오와 만화 스토리를 쓰다가 <망원동 브라더스>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자리 잡았다.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를 했다”는 김호연 작가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스토리를 만들면서 생긴 내공을 소설에 쏟아부어 큰 성과를 내는 중이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일단 재미있다. 네 명의 대책 없는 남자들이 이리저리 부딪치는 상황에다 깐깐한 집주인 60대 슈퍼 할아버지의 간섭, 네 명보다 더 대책 없는 슈퍼 할아버지 손자 석이. 10대 석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 한답시고 온갖 폼을 다 잡고 다닌다. 이들의 좌충우돌을 연극으로 만들어 <망원동 브라더스>라는 동명의 타이틀로 계속 공연하고 있다.

10대와 60대까지 이 남자들이 서울에서 가장 서민적이면서 정겨운 동네 망원동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밀쳐낼수록 더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다람쥐처럼 살며 편의점과 할인 마트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 던져버리고 망원동 재래시장에서 그들처럼 활개 펴고 싶은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대책 없는 네 남자는 사실 누구보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되찾고 싶어 한다. 낙방을 계속한 삼척동자는 공무원 시험을 앞둔 상태고, 궁여지책으로 학습만화를 그리는 오영준은 자신만의 창작만화를 꿈꾸고, 콩나물해장국을 잘 끓이는 김부장은 식당을 열고 싶고, 결국 이혼당한 싸부는 옆집 빌라 아줌마를 좋아한다.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소설
해장국집을 개업한 김부장 가게가 흥하자 시험에서 떨어진 삼척동자는 프랜차이즈를 계획하고, 옥탑방에서 불이 난 빌라로 뛰어내려 아줌마와 딸을 구한 싸부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덕분에 만화학과에서 스토리 강의를 하며 아줌마와 핑크빛 무드를 만들어간다.

오영준은 세 명의 기생충을 피해 이사하려고 방을 구하다가 반지하방을 내놓은 선화와 연애를 시작한다. 영준의 옥탑방을 방문한 자칭 ‘알바의 신’ 선화는 이들 네 사람에게 매료되어 영준에게 ‘망원동 브라더스’ 웹툰을 그리라고 종용한다.

삶이 갑갑한 사람들이 모여 티격태격하다가 사골처럼 진한 우정을 우려내며 실소와 폭소를 번갈이 짓게 하는 이 소설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웃과 교류가 단절된 세상에서 귀찮은 존재들을 외면하며 우아하게 살고 싶지만 실상 외로운 도시 사람들. 형편이 다른 네 사람이 ‘브라더스’로 뭉쳐지면서 사람 사는 정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증명하는 이야기에 자꾸만 끌려 들어간다. 왁자지껄 웃음이 터지는 옥탑방, 그 곁에 끼어 앉아 밤새워 얘기하고 싶게 하는,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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