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퇴직은 영·유아기 자녀를 둔 정규직 직원이 육아를 위해 퇴직한 경우 일정 기간 뒤 신규 경력직원으로 재채용하는 제도다.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육아휴직(2년)과 육아퇴직(3년)까지 합치면 총 5년간 육아에 시간을 쏟을 수 있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복직 시 그만두기 직전의 호봉과 인사평가 이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워킹대디나 워킹맘이 재취업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 놓고 육아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다. 근속연수가 신입 직원과 동일하게 다시 시작되는 아쉬움은 있어도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과 비교하면 기꺼이 감수할 만한 기회비용일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육아퇴직을 저출생 해법과 직원 복지의 하나로 내세우지만, 사실 육아퇴직은 경직된 한국의 고용시장에서 고용 유연성을 일정 정도 확보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은행은 비대면 디지털 금융 거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인력 조정이 불가피하다. 신한·국민·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은 정규직 직원 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육아퇴직이 활성화한다면 은행의 경직된 인력 운용에 작게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고용 유연성이 악(惡)으로 여겨지지만, 육아퇴직 바람을 보면서 어쩌면 지나친 고용 경직성이 여성의 지속 가능한 사회생활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고용 유연성이 터부시되는 건 고용주의 착취가 만연했던 산업화 시절에 대한 기억과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정리해고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고용이 경직돼 있다는 건 취업이 경직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 유독 경력 단절 여성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도 고용 경직성과 맞물려 있다. 일단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인력 조정이 매우 어렵다 보니 경력 단절 여성이 재고용될 여지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규직 남녀의 임금 격차가 큰 것도 고용 경직성의 부작용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정규직 근로자의 연령별 비중을 보면 여성은 30대(25.6%)가 가장 많다. 40대는 24.2%다. 여성이 결혼 적령기와 자녀의 영·유아기 즈음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지만, 이후 일터로 돌아오는 경우는 적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반면 남성은 30대(26.1%)보다 40대(28%)가 더 많다. 자연스럽게 연봉이 높은 4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남성이 61.5%로 여성(54.6%)을 앞선다. 남녀의 정규직 임금 격차가 큰 이유 중 하나다. 고위직에 여성이 적은 것도 고용 경직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직장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아 애초부터 고위직 여성의 인력 풀은 작을 수밖에 없어서다.
여성의 고용률이 높고 주요 요직에 여성이 많다고 높이 평가받는 북유럽 국가는 고용 유연성도 상위권이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2024 경제자유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65.9점), 핀란드(65.5점), 덴마크(64.9점) 등 북유럽 국가는 고용 유연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한국의 고용 유연성 점수는 57.2점이었다. 전 세계 평균(56.1점)을 간신히 넘은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고용 유연성을 해고의 자유로만 좁게 보는 탓에 발전적인 논의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앞으로는 근로자의 일할 자유와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생계의 필수 수단으로 무엇보다 우선시돼 온 노동이 이제는 다양한 시각과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경제적 손해를 무릅쓰고 육아퇴직을 선택한 남녀 은행원들처럼 말이다. 헤리티지재단 역시 보고서에서 고용 유연성을 ‘labor freedom(노동의 자유)’이라고 표현했다.
은행권의 육아퇴직 실험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제한적이긴 해도 퇴사와 재취업의 자유가 보장될 때 근로자의 삶이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 확인하는 귀한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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