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이빗뱅킹(Private Banking·PB)은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제공되는 맞춤형 금융 서비스로, 일반적인 은행 서비스와는 달리, PB는 고객의 자산관리, 투자, 세무, 상속 계획 등 종합적인 재정 관리 서비스 제공한다.’
PB의 사전적 정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단어지만, PB의 구체적인 개념이나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적잖다. 뉴스마다 금융권의 미래 먹거리로 PB 시장을 주목하지만, 정작 일반인들이 인식하고, 체감하는 PB 서비스는 얼마나 될까. 이 궁금증에 답을 얻고자 한경 머니는 리서치 전문 업체인 글로벌리서치의 도움을 받아 연소득 5000만 원(금융소득·근로소득·기타 소득 포함) 이상 30~60대 440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 1일부터 8일까지 7일간에 걸쳐 ‘대한민국 PB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은 PB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이 많고, 소득 높을수록 PB 인지도 ↑
흔히 PB는 부자들만을 위한 서비스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다면 실제 PB에 대한 인식과 선호도도 부자일수록 높을까. 설문 결과 ‘PB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76.8%가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즉, 우리나라 30대 이상 성인들 대다수가 PB를 알고는 있다는 셈이다. 단, 나이와 연간 소득 수준에 따라서는 그 수치가 갈렸다. 응답자들의 나이가 많고, 연간 소득이 높을수록 PB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 30대는 76%, 40대 73.7%, 50대 77.3%, 60대 88.1%가 PB를 알고 있다고 답했고, 연소득 5000만~6500만 원과 6500만~7500만 원 응답자들이 각각 73.8%, 73.4%가 PB에 대해 들어본 반면, 연소득 7500만~1억 미만과 연소득 1억 원 이상 응답자들은 전체 평균인 76.8%를 넘는 81%, 80.8%로 집계됐다.
이 같은 인지도는 공교롭게도 PB 선호도와 이용 경험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PB 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선호도의 평균치를 낸 결과 연소득 1억 원 이상의 응답자들이 63.1점으로 다른 소득 집단에 비해 높은 선호도를 보였고, 이 그룹 36.5%가 실제 PB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는 연소득 5000만~6500만 원 미만(20%), 7500만~1억 원 미만(16%), 연간 6500만 ~7500만 원 미만(14.3%)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유형의 PB 서비스를 선호할까. ‘PB 서비스 이용 시 희망하는 유형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응답자 74.5%가 시중은행을 꼽았고, 그 뒤를 이어 증권사 12%, 자산운용사 10.5%, 보험사 2.3%, 외국계 은행 0.7% 순이었다. 이는 현재 국내 은행사들이 PB 서비스 투자에 전력투구하는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시중은행들은 점점 수익성이 떨어지는 일반 지점을 줄이고,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PB 점포는 늘리는 추세다. 고액자산가 자산관리(WM) 수수료를 통해 비이자이익을 높이기 위해서다.
은행 선호도 높고, 10억 이상 돼야 이용
최근 은행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고액자산가 전문 PB센터는 지난 5월 기준 89개로 2018년 말(75개)보다 16% 증가했다. 이에 비해 일반 점포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금융감독원 정보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4대 은행의 국내 영업점포(출장소 포함)는 총 2826개로 2018년 말(3563개)보다 20.6% 주는 등 PB 서비스를 선점하기 위한 은행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또한 응답자들은 PB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10억 원 이상’을 소유한 고액자산가여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PB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자산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라는 질문에 40.7%의 응답자가 10억 원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고, 5억~10억 원 미만은 31.4%, 1억~5억 원 미만 20.9%, 1억 원 이하 7%로 나타났다. 이는 ‘PB 서비스 주 이용 대상은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에서 더욱 또렷한 답이 나왔다.
응답자 80.2%가 입을 모아 ‘고액자산가’라고 답했고, 일반소득층 15.7%, 기업가 3%, 연예인·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이 1.1%를 차지했다. 일반소득층 15.7%를 제외하면 약 85%의 응답자들이 PB는 부자들의 서비스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현재 금융사들이 WM 시장에 사활을 건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산 많을수록 ‘절세’·‘상속’ 솔루션 원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PB 서비스의 승패는 결국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만족시키는 데서 갈린다. 무엇보다 잠재적으로 PB 서비스 이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산가들은 어떤 서비스를 선호할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PB 서비스 이용 시 기대하는 혜택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0.5%는 높은 투자 수익을 꼽았고, 66.6%가 절세, 53.9%는 재산 보호, 35.9%는 상속 및 증여 계획을 선택했다.
다만 여기서 눈길을 끄는 점은 절세 부문과 상속 및 증여 계획에 대한 니즈가 소득별로 확연히 갈린다는 점이다. 연소득 1억 원 이상 응답자의 경우 절세와 상속 및 증여 계획에 대한 요구가 각각 전체 평균을 웃도는 71.8%, 42.3%인 데 반해, 연소득 5000만~6500만 원의 경우, 평균보다 낮은 57.4%, 21.3%로 나타나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동시에 ‘PB 서비스 이용 시 중시하는 요소’에 대해서도 소득이 높을수록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선호했다.
‘영스타(Young Star) PB’로 선정된 유수정 IBK기업은행 신수동 팀장(VM)은 “실제로 고액자산가 고객들 가운데 공격적인 투자보다 안정적인 자산관리를 1순위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면서 “핵심은 절세다. 자산이 늘어날수록 내야 할 세금도 많고,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그러면서 “자산가들이 PB 서비스를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과정들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PB들도 절세 팁은 물론, 다양한 고객 맞춤형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안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채권 투자 관심 많고, 맞춤형 서비스 원해
이 밖에도 부자들은 PB 서비스를 통해 채권, 대체투자에 대한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PB 서비스를 통한 투자 희망 상품 유형은 무엇인가요’란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5.5%가 주식을 선택했고, 그 뒤로 부동산(59.1%), 채권(44.3%), 대체투자(28%), 사모펀드(20%) 순이었다. 주목할 점은 소득이 높을수록 채권과 대체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이었다.
연소득 1억 원 이상의 응답자의 경우 채권과 대체투자에 대한 서비스 희망이 각각 전체 평균을 웃도는 55.1%, 34,6%인 데 반해, 연소득 5000만~6500만 원의 경우, 평균보다 낮은 35.2%, 22.1%로 나타나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통상 부자들은 금리가 오르내릴 때마다 채권에 주목했다. 채권은 정부와 기업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차용증서로, 통상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은 상승하게 되면서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다.
반대로 금리 인하 시점이 멀어지고, 고금리 기조가 길어질수록 채권 투자에 대한 매력은 떨어진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 지속됐던 지난해 부자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채권은 어김없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4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Korean Wealth Report)’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자들은 지난해 부동산과 주식 비중을 줄이고 현금성 자산이나 채권 비중을 늘렸다.
이를 방증하듯 이번 설문에서도 연소득 5000만~6500만 원의 응답자는 35.2%가 PB 서비스를 통해 채권 투자에 도움을 받고 싶다는 데 그친 반면 그보다 소득이 많은 연소득 6500만~7500만 원은 40.3%, 연소득 7500만~1억 원 50.9%, 1억 원 이상은 55.1%로 높게 나타났다. 대체투자 역시 소득별로 선호도가 비례했다. 다만, ‘PB 서비스 이용 시 추가 제공 희망 서비스’를 묻는 질문에는 소득에 상관없이 ‘부동산 투자 자문’이 65.9%로 이변 없이 가장 많았고, 가족 재무 교육 52.5%, 자선활동 컨설팅 27.5%, 예술품 투자 자문이 25.2%로 나타났다.
PB 서비스 수수료 지불 의향 ‘아직은 글쎄’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이나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서는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금융 상품은 팔지 않고 금융 자문만 제공하는 순수투자자문사를 통해 자산관리를 하고 있다. 자문료를 내야 하는데도 순수 자문사를 선택하는 이유는 보다 합리적인 포트폴리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PB 서비스 대부분이 금융 상품 판매로 이윤을 얻는 구조여서, 사실상 순수 자문비는 무료다. 그렇다면 향후 PB 서비스가 유료로 전환할 경우 기꺼이 자문비를 지불할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응답자의 절반 수준으로 나타났다. ‘PB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습니까’란 질문에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각각 2.7%, 33%로 긍정의 답이 40%가 채 되지 않았다. ‘보통이다’라는 답변이 46.4%로 가장 높았고, ‘그렇지 않다’(15.7%), ‘전혀 그렇지 않다’(2.3%)로 집계됐다.
‘PB 서비스 추천 의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는 답변이 총 55.1%로 절반을 넘었다.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실제로 수수료 지불로 이어지려면 금융사들의 더 다양한 시도와 치밀한 PB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맞춤형 서비스와 정보에 대한 니즈 커
이 밖에도 PB 서비스에 대한 개선 요청사항을 묻는 항목에서도 대다수의 응답자들은 맞춤형 서비스 강화와 더 많은 정보 제공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PB 서비스 정보의 충분성에 대해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충분하다’는 의견에 비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에서 ‘PB 서비스 이용 시 개선 요청사항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62.3%가 ‘맞춤형 서비스 강화’를 꼽았고, ‘더 많은 정보 제공(49.3%)’, ‘서비스의 신뢰성 향상(46.4%)’, ‘수수료 인하(31.9%)’로 조사됐다.
‘금융사 제공 PB 서비스 정보가 충분한가’라는 질문에도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는 답변은 각각 0.9%, 16.6%로 낮았고, 52.5% ‘보통이다’라고 답했고, ‘그렇지 않다’와 ‘전혀 그렇지 않다’는 27%, 3%로 집계돼 PB 서비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홍보·마케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수정 기자
설문 글로벌리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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