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는 반도체 수탁생산을 뜻한다. 엔비디아, 퀄컴 같은 팹리스가 설계한 칩을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칩을 직접 설계하는 기업이 늘면서 파운드리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1150억달러(약 160조원). 이 시장의 60%를 대만 TSMC가 장악하고 있다. 2019년부터 삼성전자가 추격을 공식화했지만 50%포인트에 달하는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TSMC가 파운드리만 하는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대만 ASM, 미국 AMKOR, 중국 스태츠칩팩 등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로 불리는 기업의 영역인 최첨단패키징(여러 첨단 칩을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공정)도 한다. 엔비디아의 주문을 받아 생산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이 칩에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묶어 AI 가속기로 만드는 것도 TSMC다. 여기엔 CoWoS라고 불리는 TSMC의 최첨단패키징 공정이 활용된다.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이외의 모든 반도체 사업에 손을 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TSMC가 새롭게 정의한 '파운드리 2.0'에 속하는 사업의 규모는 2023년 기준 2500억달러(348조원) 수준이다. TSMC가 자체적으로 추정한 자사 점유율은 28%. 기존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점유율(60%)보다 수치는 적어졌지만, TSMC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파운드리 2.0 시장은 올해 1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TSMC는 이 시장에서 점유율을 계속 끌어올릴 계획이다. 웨이 회장은 "강력한 기술 리더십과 광범위한 고객 기반에 힘입어 올해 점유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다르다. 2nm 다음엔 1.8nm 또는 1.6nm고 그다음은 1.4nm다. 이후 로드맵은 제시한 곳이 없다. 그만큼 선폭을 줄여 공정을 미세화하는 게 어려워진 것이다.
대안으로 떠오른 게 '칩렛'으로도 불리는 최첨단패키징이다. 초미세공정을 통해 작은 칩에 많은 기능을 욱여넣지말고, 각 기능에 최적화된 공정에서 칩을 만든 다음, 이 칩들을 최첨단패키징을 통해 잘 묶고 연결하면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TSMC가 최첨단패키징 CoWoS와 3D IC, 인텔은 포베로스, 삼성전자는 아이큐브 등을 앞세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파운드리와 최첨단패키징을 묶은 '턴키서비스'를 앞세워 고객사 대상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파운드리포럼에선 "HBM, 파운드리, 최첨단패키징 간 협력을 통해 AI 솔루션을 선보여 고객의 공급망을 단순화하는 데 기여하겠다"며 "고객사 입장에선 (삼성전자에 턴키로 맡기면) 생산 기간을 개별 기업에 맡길 때보다 20%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와 최첨단패키징을 다 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자 TSMC가 반격한 것"이라며 "'파운드리 2.0'을 통해 맞불을 놓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TSMC는 고객사에 서비스 가격을 10~20% 올리고 있다. 만약 TSMC가 60% 넘는 점유율을 바탕으로 부당하게 가격을 올렸다면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가격남용'에 해당,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프랑스 공정거래위원회가 AI 가속기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엔비디아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엔비디아가 소프트웨어 'CUDA'를 통해 고객사를 묶어두고 가격을 부당하게 올렸거나 경쟁사를 배제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파운드리 2.0 선언으로 TSMC가 속한 시장이 전통 파운드리에 패키징, 테스트까지 더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1350억달러 규모인 패키징, 테스팅, 마스크 제조 시장 등에도 전통의 강자들이 있기 때문에 TSMC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웨이 회장이 컨퍼런스콜에서 "파운드리 2.0 시장에선 2023년 기준 TSMC의 점유율이 28%"라고 강조한 것도 독점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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