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2900 목전까지 갔던 코스피지수가 힘없이 2700선으로 고꾸라졌다. 외국인투자자는 일주일 새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한국 증시에서 빼갔다. 시가총액 상위주가 일제히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외국인은 국내 증시서 조선·방산주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관 투자가는 삼성전자와 바이오, 2차전지주를 순매수했다.
○외국인, 반도체 팔고 조선·방산주로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2일 이후 6거래일간 코스피지수는 3.65% 하락했다. 장중 2896까지 상승했던 코스피지수는 일주일만에 2700선으로 주저앉았다. 이 기간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1조337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의 대만 반도체산업에 대한 적대적 발언을 한 데 이어 미·중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영향이다. 특히 SK하이닉스 9140억원어치, 삼성전자 4780억원어치 등 반도체 주도주를 팔아치우며 서둘러 차익실현에 나섰다.이 가운데서도 외국인은 조선·방산산업을 적극적으로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기간 외국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삼성중공업이다. 174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반도체주를 팔고 삼성중공업을 사들인 것은 최근 조선산업이 장기 호황사이클에 접어든데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중국 조선업에 대한 견제가 심화되면서 한국 조선기업이 반사이익까지 얻을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올해 연간 수주 목표의 50%(49억달러)를 달성한 삼성중공업은 하반기에도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선 등을 추가 수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중공업의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215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0%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서재호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선박 발주가 계속되고 있는데다 신조선가도 우상향하고 있는만큼 안정적으로 실적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많이 매수한 종목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1010억원)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세계 각국에서 'K-방산'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했다. 이 밖에 LG전자(870억원), 삼성전기(760억원), LG이노텍(620억원) 등 최근들어 실적 컨센서스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순매수했다.
○삼전·바이오·2차전지 매수한 기관
반면 기관은 이 기간 삼성전자(4070억원)를 가장 많이 사들이며 주가를 방어했다. 이 영향으로 같은기간 SK하이닉스가 13.07% 하락한 반면 삼성전자는 3.65% 하락한 데 그쳤다. 하반기 D램 반도체의 공급 부족이 심화하면서 제품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개인용컴퓨터(PC), 스마트폰 등의 교체 수요가 다가오면서 수요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셀트리온(3위·820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4위·590억원) 등 바이오기업도 대거 사들였다. 9월 미 기준금리 인하가 기정사실화되면서 금리 인하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성장주로 투심이 옮겨갔다는 분석이다.
코스닥 시장에선 2차전지 기업을 순매수했다. 에코프로비엠(460억원)과 에코프로(370억원) 등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선 LG에너지솔루션(240억원)도 순매수했다. 지난 19일 LG에너지솔루션(3.13%)은 시가총액 상위주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에서 하차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후보 교체로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면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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