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일본 도쿄 중심 주오구 가치도키에 있는 노인 임대주택 코코판. 이곳에서 혼자 7년째 살고 있는 80대 노인 세지마 하쓰코 씨는 “자유로우면서도 안전하다”며 “특히 직원들의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일본의 고령사회 정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이날 이곳을 찾았다.
한국보다 20년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01년 ‘고령자 거주 안정 확보 법률’을 제정, 민간기업을 통해 코코판 같은 ‘서비스지원형 고령자 주택’을 대폭 늘리고 있다. 일본 최대 교육·의료복지 기업 각켄그룹이 운영하는 코코판은 총 229곳(1만1752실)에 달한다.
코코판 가치도키는 53층 규모 고층 타워맨션의 1~4층을 차지하고 있다. 거주 인원은 34명, 평균 연령은 87.7세다. 상대적으로 경증인 노인이 대부분이지만, 간병인이 365일 24시간 상주하고 있다. 방문 요양도 가능해 중증 또는 치매 노인도 거주할 수 있다. 단순 거주에서 나아가 돌봄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1인 거주 공간은 18㎡ 규모다. 부부가 함께 거주하는 2인실도 선택 가능하다. 1인실 기준 식비를 포함한 총비용은 월 15만엔(약 130만원) 수준이다. 일본 노인이 받는 후생연금 평균 수급액과 같은 규모다. 일본 중산층 노인에겐 큰 부담 없는 가격이다.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하기 힘든 일본 노인들도 과거엔 고가의 ‘시니어 맨션’, ‘유료 노인홈’이나 저렴하지만 질이 낮은 ‘개호노인 복지·보건시설’, ‘특별양호 노인홈’ 중에 선택해야 했다. 수요가 가장 많은 중산층은 선택이 쉽지 않은 구조였다.
일본 중산층 노인과 윈윈을 도모한 기업이 각켄이다. 고바야카와 히토시 각켄 코코판 대표는 “돌봄이 필요한 고령층이 개인 공간에서 적당한 가격에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46년 창립한 각켄은 원래 교육이 주된 사업이었지만,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의료복지 사업 비중을 늘리며 변신했다. 일본 전역으로 코코판을 확대하며 규모의 경제를 통해 노인 주거 부담을 낮췄다. 작년 매출은 1641억엔(약 1조4500억원), 영업이익은 61억7000만엔(약 545억원) 수준이다. 도쿄증시 프라임 상장사인 각켄의 주가는 지난 1년 사이 17%가량 상승했다.
지방자치단체도 노인 주거 부담 완화에 힘을 보탰다. 코코판 가치도키가 입주한 ‘가치도키 더 타워’는 개발 전부터 부지 일부를 주오구가 소유하고 있었다. 이 맨션을 지으며 건물 일부를 복지시설로 활용키로 했고, 주오구는 코코판에 토지를 제공했다. 정부의 건축비 지원도 있었다.
각켄 코코판은 각 지자체와 연계해 지역공동체 조성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고령자 주택에 일반 주택, 학원, 병원, 편의점 등을 한곳에 모은 복합시설을 여러 곳에 구축할 방침이다. 고바야카와 대표는 “소비력이 있는 베이비붐 노년층을 중심으로 이런 주택 수요가 지속 확대될 것”이라며 “약 60실 규모의 주택을 100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고령사회 대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주 부위원장은 “연말까지 소득·일자리, 요양·의료·돌봄, 고령자 사회참여, 주거·교통 인프라, 로봇·AI를 활용한 에이지 테크 등 5대 분야에 대한 대책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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