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관 서열 1위' 과기정통부의 숙제

입력 2024-07-21 17:16   수정 2024-07-22 00:20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국가 의전 서열은 높다. 부총리인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장관 바로 뒷순위인 15위로, 장관급 중 가장 앞서 이름이 적힌다. 다음 순서인 외교부 장관은 19위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이라는 두 개 분야를 아우르며 차관급 세 명을 휘하에 두고 있다. ‘지갑’도 두둑하다. 과기정통부가 연간 주요 대학과 연구소 등에 나눠주는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은 24조원이 넘는다.
기술 트렌드 변화로 역할 커져
과기정통부 장관의 존재감이 의전 서열만큼 컸던 것은 아니다. 부동산이나 세금, 대입제도처럼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업무가 많지 않고 상대적으로 미디어 노출도 적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맡는 분야의 특수성도 영향을 미쳤다. 과학기술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먼 미래의 일로 느껴진다. 정보통신 분야 역시 통신사를 관리하는 일상적인 업무처럼 여겨지기 쉽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총괄하는 부처가 덜 언급된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는 모습이다. 자유무역 기조가 힘을 잃고 기술 패러다임이 급변하면서 기술과 산업 정책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기업과 연구기관이 선수, 정부가 박수부대 역할을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유시장경제의 선봉을 자처하는 미국도 민간과 정부가 ‘이인삼각’으로 힘을 합친다. 국내 전문가들도 조연처럼 느껴졌던 과기정통부 장관이 주연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제일 눈에 띄는 변화는 ‘챗GPT’ 등장이 촉발한 인공지능(AI) 기술의 대중화다. 전자기기와 인터넷 서비스 등 생활 곳곳에 AI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AI는 반도체나 자동차, 2차전지와는 다르다.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글로벌 빅테크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겼다가는 미국 빅테크에 기술 주도권을 내줄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AI 시대 韓 생존 전략 모색해야
그렇다고 유럽처럼 다짜고짜 규제 장벽을 높일 수도 없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푸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규제 수준을 올리면 국내 AI 기업이 먼저 죽을 수 있다. 빅테크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으면서도 우리 기업도 지킬 수 있는 묘책이 절실하다.

국가 R&D 시스템 혁신도 중요한 과제다. 정부는 지난해 R&D 예산을 줄였다가 원래대로 되돌리는 과정을 겪으면서 새로운 정책 키워드로 ‘집중과 선택’을 골랐다. 전체 예산 규모는 줄이지 않지만 한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분야에 지원을 집중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총론은 그럴듯하지만 각론으로 가면 곳곳이 암초투성이다. 어느 것이 ‘갈라먹기식 R&D’이고 어느 것이 ‘미래형 R&D’인지 구분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기대만큼 예산이 배분되지 않거나 삭감된 분야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을 잠재우고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윤석열 정권의 시작과 함께 과기정통부를 이끌던 이종호 장관이 물러나고, 유상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새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반도체 전문가가 소재 전문가에게 바통을 넘기는 모습이다. 새 과기정통부 장관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고차방정식을 슬기롭게 풀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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