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 백화점의 까르띠에 매장 앞에서 만난 30대 여성 소비자는 이 같이 말했다. 통상 주말에 이 브랜드 매장에 입장하려면 3~4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불가리나 반클리프아펠 등 다른 하이 주얼리 매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때 오픈런 대란을 빚던 인근 샤넬 매장엔 대기가 거의 없다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오랜 시간 대기해 매장에 입장해도 구매를 장담하긴 어렵다. 매장에 먼저 들어선 이들이 재고가 있는 물건을 다 쓸어가는 통에 제품을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게 명품족들 귀띔이다.
리치몬트 그룹이 발표한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회계연도(2023년 4월1일~2024년 3월31일) 매출은 206억 유로(31조1700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실제 환율 기준 3%, 불변 환율 기준 8%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리치몬트 그룹은 까르띠에, 바쉐론 콘스탄틴을 비롯해 반클리프아펠, IWC, 피아제, 예거르쿨트르, 몽블랑 등 고급 시계·주얼리 브랜드와 함께 끌로에, 델보 등 고급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특히 주얼리 부문 매출 비중이 커 69%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첼라티, 까르띠에, 반클리프아펠 매출은 142억 유로(21조4900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도 상황은 비슷해 같은 시기 리치몬트코리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한 1조5014억원을 기록했다. 실제 글로벌 리치몬트 그룹의 매출 절반 가까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나왔다.
HSBC의 글로벌 소비자 및 리테일 리서치팀에선 “명품 패션 산업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고급 주얼리 구매자는 일반 고급 소비자보다 훨씬 더 회복력이 강한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고 했다. 국내 한 명품 리셀업자도 “요즘 강남 부유층이나 젊은 신흥 부자들이 샤넬, 루이비통 등 흔한 명품 가방류보다는 값이 비싸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주얼리와 시계로 관심을 빠르게 옮기고 있다”고 했다.
주얼리가 돈이 된다는 점을 감지한 명품 브랜드들은 앞다퉈 보석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특히 패션 제품 중심으로 라인업을 꾸리던 샤넬, 디올,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패션 하우스가 주얼리 제품군을 속속 내놓는 중이다. 샤넬이 최근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선보인 샤넬 오뜨 조알러리 스포츠(Haute Joaillerie Sport)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오뜨 조알러리는 하이 주얼리의 불어식 표현으로, 최상급·최고급 보석이라는 뜻이다. 구찌 역시 하이 주얼리 컬렉션 ‘라비린티(Labirinti)’를 출시했다. 루이비통, 디올 등도 팔찌나 목걸이, 반지, 브로치 등 주얼리 제품 출시를 늘리고 있다.
"값이 뛰기 전에 사두자"는 명품 구매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인상 계획 있는 브랜드뿐 아니라 최근 값을 올렸던 브랜드 역시 '조만간 또 오를지 모른다'는 염려로 덩달아 판매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미뤄졌던 결혼식 수요가 증가하면서 예물이나 증여 목적 등을 위해 시계나 보석류를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미아니 매장에서도 인상을 앞두고 매장을 찾은 고객도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매장 관계자는 "매장에 왔다가 원하는 제품이 없어 일단 결제부터 하면 안 되냐고 요구하는 손님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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