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누비는 청년 항해사…"만선으로 돌아올 때 행복"

입력 2024-07-22 17:53   수정 2024-07-23 01:44


“마지막 항차에 만선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가장 행복합니다.”

바다를 사랑하고, 김재철 동원그룹 창업주를 존경해 항해사가 된 28세 청년은 만선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거친 파도, 바닷바람과 맞선 경험 때문일까. MZ세대 젊은이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단단함과 진중함이 보였다.

22일 만난 이승한 동원산업 1등항해사(사진)는 이른바 ‘대치동 키즈’다. 대곡초 대청중 단국대사대부고를 졸업했다. 강남 8학군에서 그는 또래 친구들과 다른 꿈을 꿨다. 선장이었다. 이 항해사는 “중학생 시절 ‘미래에는 1차 산업이 주목받을 것’이란 짐 로저스의 강연을 듣고 해양수산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했다. 선장의 길을 걸은 외삼촌의 조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선원들을 이끌며 느낀 책임감과 사명감이 가슴을 뛰게 했다는 삼촌의 말을 듣고 선장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실패하더라도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바다로 가기 위해 이 항해사는 부경대 해양생산학과에 입학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해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생 시절 그는 <김재철 평전>을 읽고 ‘발상을 전환해 진취적으로 세계로 뻗어나가자’는 김 회장의 ‘거꾸로 세계 지도’ 철학에 매료됐다. 학부 3~4학년엔 동원육영재단의 ‘섬김의 리더십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학부를 수석 졸업하고 해양수산부 장관상을 받았다.

2019년 여름 항해를 시작했다. 바다는 만만치 않았다. 태풍의 가장자리를 지나며 20m 높이의 파도와 싸울 때는 무섭기도 했다. 때로는 육지의 집, 가족, 친구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집으로 가는 길을 그리며 잠들면 그날 밤 집에 있는 생생한 꿈을 꾸기도 해요. 놀라서 잠에서 깨어나면 순간 집에 다녀온 것 같아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아직 선상에 있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합니다.”

이 항해사가 승선한 배는 항상 최고 수준의 어획량을 기록했다. 지난해 승선한 본아미호는 동원산업 역대 최고의 어획 실적을 올렸다. 드론으로 참치떼의 이동을 탐지 추적하는 선망어업에 대해 이 항해사는 그 누구보다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는 “드론을 활용한 어군 탐지는 기존 헬리콥터 탐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고, 무엇보다 선원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뱃사람이라고 하면 아직도 거친 이미지를 연상하지만,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을 접목한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에 가깝다”며 “일반 직장인이라면 가보기 힘든 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 투발루, 크리스마스섬 등 남태평양과 적도 지역까지 가본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동원산업 선망선을 기준으로 해기사들의 평균 소득은 또래 직장인보다 3~4배 높다. 통상 1년간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6~12개월 쉴 수 있다. 이 항해사의 꿈은 동원산업 대표다. 항해사와 선장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쉬운 선택보다 힘든 선택일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나는 선택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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